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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고광진/「재난관리법」 있으나 마나

입력 | 1997-08-12 08:16:00


지난 6일 하늘에서 비행기가 추락한데 이어 7일 지하철이 탈선했다. 삼풍백화점 참사 이후 정부는 재난관리법을 만들었다. 이 법은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중앙안전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중앙긴급구조구난본부를 두어 재난예방과 수습 응급조치 등 필요한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재난관리를 위해 법은 만들었지만 이번 KAL기 추락사고를 보면서 구체적인 행동규범이 준비돼 있지 않음을 뼈저리게 반성할 수밖에 없다. 과연 중앙안전대책위와 긴급구조구난본부는 제대로 움직였는가. 긴급구조구난을 위한 훈련은 어느 정도 됐는가. 응급의료진이나 구급팀은 얼마나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가. 특히 해외에서의 재난에는 대책이 서 있는가. 우리는 대형사고를 너무도 많이 겪었다. 허점투성이 구난체제에 국민은 분노하고 안타까워했다. 대형참사가 날 때마다 되풀이돼온 지적이 철저한 진상조사와 긴급구조 재난체계의 정비였다. 그러나 이번 사고에서도 여전히 허점투성이로 드러났다. 사고당일만 해도 정부조사단과 함께 국내 전문재난구조요원 응급의료진 전문가 등이 동행해야 마땅했다. 정부와 항공사는 대형참사를 겪으면서 구조적인 문제점이 무엇인지 뼈를 깎는 자기성찰을 해야 한다. 사고가 날 때마다 사죄광고나 위로의 말보다는 국민의 신뢰를 다시 찾아야 할 것이다. 사고현장인 괌의 니미츠힐로부터 우리 민족의 숭고한 인간애가 전해지고 있다. 불덩이 속에서 어린딸을 밖으로 밀어내고 자신은 끝내 화염 속에 산화한 어머니, 자신이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인명을 구출해낸 승무원, 최후의 순간까지 몸부림치며 자식을 꼭 부둥켜안은 어머니,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손상되거나 타버린 유해 속에서 부모와 자식이 끌어안은 형체로 오그라든 숯덩이 시신 등을 보면 온몸이 떨리고 눈물이 나며 인간의 숭고함 앞에 저절로 숙연해진다. 가정의 행복을 앗아간 참담한 슬픔을 생각한다면 정부와 항공사측은 비행기 동체와 함께 파괴돼버린 희생자들의 유품과 오체를 수습해 유족들에게 전하고 용서를 받아야 한다. 철저한 진상조사로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고 재발방지책을 마련, 유족에게 용서를 받은 후 보상문제를 협의해도 늦지 않다. 재난관리법 설치와 법령정비, 관련기술의 개발과 함께 재난에 대비한 위기관리조직도 제 구실을 할 수 있도록 인력 장비 체제를 조직적이고 합리적으로 갖추는 것이 절실히 요구된다. 고광진(한국민간자원 구조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