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하게 연출된 공포는 카타르시스를 안겨 준다. 특히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담은 공포물은 신경을 옥죄는 재미 뿐 아니라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반면 잔혹한 장면에 의존하는 공포물은 메스꺼움으로 끝난다. 욕심이 앞서면 연출이 거칠어져 「불가사의」를 보는 맛이 사라져 버리는 탓이다. 16일 밤 KBS 2 「전설의 고향―사굴」 편은 깔끔하지 못한 공포물에 속했다. 낯익은 귀신, 세밀하지 못한 특수 분장에다 피가 튀는 장면이 많아 삼류 공포 영화를 보는 듯 했다. 우선 인두겁을 쓴 천년묵은 구렁이 분장. 얼굴은 「피칠한 에일리언」이었고 몸통은 그 흔한 뱀비늘 하나 없는 맨살이어서 실소를 자아냈다. 새끼 구렁이가 죽은 어미의 눈알을 밀고 튀어 나오는 장면과 구렁이의 상대인 판관의 팔이 잘려 뒹구는 장면은 공포를 불러일으키겠다는 의욕을 읽을 수 있었지만 불쾌감도 어쩔 수 없었다. 또 죽은 구렁이가 되살아나는 장면은 반전보다 「막판 놀람」을 노린 상투적 구성이었고 처녀 귀신도 늘 보던 그대로였다. 공포는 무지의 소산이라는 말이 있다. 뒤집어 보면 과학시대에 귀신에 대한 묘사나 해석, 공포 연출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도 된다. 올 여름 방송가에 귀신 시리즈가 유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전설의 고향」처럼 한국형 귀신의 전형이 있다. 산발한 머리, 흰자위를 다 드러낸 눈, 피묻은 아래턱, 한맺힌 죽음. 세간에 오르내린 「만득이 시리즈」처럼 유머와 공포를 동시에 갖춘 귀신은 상상하기 어려울까. 변기통에 빠져 물을 먹기도 하는 귀신이 거머리처럼 만득이를 쫓아다닌다. 요즘 사람들의 까닭모를 공포…. 방송가의 「귀신」이 뻔한 소재와 공포 영화의 단순 흉내에 불과하다면 차라리 만득이 시리즈처럼 귀신에 대한 발상과 해석을 바꿔 봤으면…. 〈허 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