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위에 사뿐히 앉아 있는 물방울. 금방이라도 흘러 내리거나 안으로 스며들 것만 같다. 그러나 물방울은 움직이지 않는다. 물방울 작가 김창열화백(68). 그처럼 움직이지 않던 그의 물방울들이 오랜만에 사람들을 찾는다. 다음달 2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 현대(02―734―8215)에서 열리는 김창열근작전. 파리에서 활동중인 그는 이곳에 정착한지 4년만인 지난 72년부터 지금까지 25년간 일관되게 물방울만을 그려왔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물방울이 흘러내릴까봐 긴장한다. 어떤 사람은 참지 못하고 살짝 손가락을 대본다. 그리고 나서야 실제 물방울이 아닌 것을 알고 안도한다. 김화백은 이번 전시를 위해 최근 서울에 왔다. 그는 지금 종로구 평창동 작업실에서 물방울을 그리고 있다. 전시작품은 5백호에서 20,30호에 이르기까지 30여점. 몇개의 설치작품도 있다. 김화백은 그의 작업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모든것을 물방울에 용해시키고 투명하게 「무(無)」로 되돌려 보내기위한 행위다. 분노도 불안도 공포도, 그 모든 것을 「허(虛)」로 돌릴때 우리들은 평안과 평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어떤 작가들은 「에고」를 넓히기 위해 작업하고 있으나 나는 오히려 「에고」의 소멸을 지향하며 그 표현방법을 물방울에서 찾고 있다』 평론가들은 동양적인 겸허가 그의 그림속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의 물방울 작업은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뉜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바탕에 순수하게 물방울만을 그렸다. 그러다가 86년을 전후해 물방울의 바닥에 글씨가 등장했다. 글씨는 대부분 인쇄체로 또박또박 그려진 천자문이다. 때로는 단순한 획의 나열이나 반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김화백이 어린시절 할아버지한테 배웠던 천자문에 대한 회상이 파리에서 작업중인 그에게 리얼하게 다가온 것이다. 물방울은 이 글씨위에 자라잡기도 하고 때로는 글씨를 비켜나서 화면의 가장자리에 떠오르기도 한다. 서울대미대에서 공부하고 미국 뉴욕아트스튜던트리그에서 판화를 전공한 그는 지난 1961년 파리비엔날레를 시작으로 시카고 바젤 로스앤젤레스 아트페어 등 여러 국제미술제를 통해 우리 현대미술을 세계에 알리는데 일조했다. 그의 물방을 작품은 파리 퐁피두미술관, 워싱턴 허시혼미술관, 도쿄의 국립근대미술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내외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송영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