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나라의 꿈나무들은 무지개빛의 마음과 마음을 이었다. 그들에게서 어른들이 수십년이 넘도록 속 깊이 묻어놓고 있는 원한과 갈등의 응어리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들은 한데 뒤섞여 어울리며 마음껏 달리고 또 뛰었다. 말이 달라 직접적인 의사소통은 안됐지만 몸짓과 눈빛으로 서로를 읽고 이해했다. ▼ 승패떠난 화합 한마당 ▼ 지난 20일부터 1주일여 동안 일본 시즈오카(靜岡)현 시미즈(淸水)시에서 열린 전일본소년소녀축구대회에 초청받아 참가한 한국의 인천 만수북과 부평초등학교 일레븐은 열전을 무사히 마친 뒤 조용한 항구도시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남겨주고 돌아갔다. 연일 섭씨 30도가 웃도는 폭염속에서도 두 나라의 꽃나무들은 피곤한 기색 없이 미래를 향한 날개를 한껏 폈다. 어린이들은 매경기에 앞서 고사리손을 맞잡고 입장, 학부모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경기에 임해서는 승패의 집념을 떠나 나름대로의 기량을 페어플레이 정신과 함께 유감없이 발휘해 큰 박수를 함께 받았다. 무더위 속에서 날마다 두차례씩 계속되는 경기에 지쳐 코피가 터질 정도였지만 한국의 어린이들은 그래도 보람을 느끼며 있는 힘을 다 했다. 오히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어른들의 성화에 어떨 때는 부담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운동장에서는 몸에 부딪혀 넘어진 상대를 부축해주는 아름다움을 보였고, 같이 들어간 대중목욕탕에선 서로의 등을 밀어주며 우애를 다졌다. 또 저녁에는 가위 바위 보 놀이를 하며 함박웃음의 꽃을 피웠다. 일본의 아사히신문사와 한국의 동아일보사가 월드컵 공동개최 기념사업의 하나로 마련한 이번 행사는 이렇듯 동심의 흐뭇함을 숱하게 뒤로 하고 막을 내렸다. 일본축구의 성지(聖地)로도 불리고 있는 시미즈시의 상당수 시민들은 축구를 생활화하고 있다. 그런 곳에서 한국팀이 비록 준결승전에서 지기는 했지만 월등한 실력을 보인데 대해 시민들은 상대에 대한 야유도, 자기편에 대한 일방적인 응원도 하지 않았다. 관객들은 양쪽 모두에게 똑같이 뜨거운 성원을 보냈다. 축구대회에 곁들여 역시 두 신문사가 공동주최한 한일 초등학교 작문콩쿠르의 입상 어린이 6명도 결승전장에 나와 이기고 짐에 개의치 않고 모두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했다. 티없이 맑고 밝은 그들의 모습에서 어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은 무서운 폭탄을 퍼부은 B29 비행기도, 무자비하게 짓밟힌 일본군위안부 이야기도 모르고 있다. ▼ 『이웃끼리 왜 미워해요』 ▼ 『B29라니 그렇게 진한 연필이 언제 나왔느냐』 『한국 사람들은 우리 일본을 왜 미워하는지 모르겠다』고 천진스럽게 되물을 정도로 과거 역사를 모르고 있다. 어린이들은 바로 이웃 사이인 한일 두 나라가 마찰을 빚는 것이 의아스럽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어느 때나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어른들은 두 나라간의 돈독한 우호증진을 너나없이 역설했다. 어린이들에게는 한일간의 가교 역할을 맡아달라고 거듭 주문했다. 그러나 이번 일련의 행사를 통해 어린이들은 「우리의 몫은 우리에게 맡기고 새싹들의 내일을 위해 어른들은 말보다는 행동을 통해 얼룩진 과거 역사를 하루라도 속히 재조명해 달라」는 듯한 메시지를 어른들에게 남겨주었다. 그러한 메시지가 가슴에 와 닿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꼈다는 한 관계자의 말속에서 동아일보사와 아사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이번 첫 사업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박기정(동경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