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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자노트]김순덕/월급을 못가져오는 남편

입력 | 1997-08-27 20:40:00


남편이 이달도 월급을 가져오지 않았다. 추석보너스나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30대중반의 짱짱한 전문기술직 남편을 두고, 그래서 명예퇴직같은 건 남의 일로 생각했던 내게 이런 변이 닥칠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난달 이미 딸아이 영어과외를 끊었다. 아빠 여름보너스 나오면 사주겠다고 약속했던 컴퓨터도 못사줬다. 학교때 국어시간에 배운 현진건의 「빈처」를 떠올렸고 『머리라도 잘라 팔아야 하나』싶어 잠깐 고민했다. 회사살리기에 필요하다며 칼만 안들었을 뿐 조폭(조직폭력배)같은 얼굴로 돈을 요구하길래 대출까지 받았다. 친정어머니는 『집문서만은 내놓지 말아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나는 남들의 동정도 받지 못한다. 나의 평생직장은 기막힌 사회보장보험이었던 셈이다. 남편 월급만 바라보며 집에 들어앉아 있었다면 어쩔뻔했는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지경이다. 이때문일까, 요즘 나는 「기우증(杞憂症)」으로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다. 「국민기업」이라고까지 불려온 회사가 휘청거릴 수도 있다는 건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 나라에 흔들리지 않을 회사는 또 얼마나 될까. 뜻밖의 재난에 대비해서 보험을 들라고? 보험회사도 부실해서 영업제한을 받는 판에? 은행마저 다른 나라의 불신 대상이 되고 국가신용도는 곤두박질치는 이 나라에서 하늘이라고 무너지지 말란 법 있나? 생각할수록 희한한 것은 나라와 경제가 이렇게 돌아가는데도 책임지는 자 하나 없다는 사실이다. 책임은커녕 각자 또는 너나 잘하라며 자구노력만을 강조한다. 정부는 기업에, 기업은 노동자에게, 노동자는 또 만만한 마누라에게…. 그러나 도둑이 날뛴다면 제각기 도둑맞지 않게 조심하거나 사설경비업체를 고용하기 전에 철통같은 치안을 유지시켜주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그러라고 낸 세금으로 공무원 월급주는 것 아닌가? 그들은 제 할 일을 안하고,못하며, 감투싸움에만 몰두하면서, 고통은 분담하자며 국민에게 떠넘기기는 참 잘도 한다. 그러면서 등터진 새우들을 향하여 『이럴 때일수록 사랑과 이해로 감싸안는 것이 가정의 역할이요, 주부의 경쟁력』이라고 해대니, 난 이 나라 주부직(職) 사퇴하고 싶다. 김순덕 (문화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