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살때 엄마 곁을 떠나 미국으로 입양된 소녀가 스물네살이 되어 친부모를 찾는다. 천신만고끝에 찾은 친어머니는 그러나 불행하게도 암으로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 지난달 31일 밤8시 KBS 1TV에서 방송한 「쉐리 순 디벨라, 16년만의 귀향」은 눈물샘을 자극하는 그런 소재를 다루면서도 「그저 훌쩍이게 하는 다큐」만은 아니다. 우리가 사는 그대로의 현실, 핏줄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세월의 벽과 무게가 시청자의 가슴을 흔들어댄다. 이야기는 어른이 된 딸을 공항에서 만난 어머니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일찍 홀로된 뒤 폐결핵을 앓던 어머니는 다섯 형제를 키울 자신이 없어 아래로 어린 세 남매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한다. 가난하게 함께 살 바에야 입양을 보내 배불리 먹고 배우게 하는 편이 그래도 낫다는 생각으로. 생모의 바람대로 아이들은 부유한 미국인 양부모를 만났지만 「또 버려질지 모른다」는 걱정으로 늘 두려워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따뜻한 마음을 지녔던 양부모의 사랑은 아이들을 포근히 감쌌다. 프로 중간중간에 삽입된 양부모가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촬영한 흑백 비디오는 마치 드라마를 보는 듯한 극적인 효과를 자아냈다. 이후 카메라는 예민한 소녀였던 쉐리가 정체성 혼란을 겪으면서 자아를 좇는 과정을 추적한다. 고등학교시절 머리를 염색하고 컬러 렌즈를 끼던 쉐리는 대학에 들어간 뒤부터 「핏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드디어 친어머니를 찾게 된다. 그러나 재회의 기쁨은 잠시였다. 16년만에 만난 어머니와 딸은 말도 통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낯설었다. 쉐리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날 가족들의 모임에서 있었던 다툼이 가장 인상적인 것도 이때문이다. 자신에게 신경쓰지 않는 듯한 딸에게 섭섭한 어머니, 서로 만나서 실망만 시켰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는 딸, 도대체 무엇을 기대했느냐면서 냉정하게 마음을 다잡는 언니…. 서로 다른 언어로 다투면서 눈물을 흘리는 가족들의 모습을 카메라는 가감없이 보여준다. 만남이 또다른 고통이 되었던 가족들의 현실. 입양이 한 가정에 던진 파문과 그림자가 그대로 드러난다. 또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입양아의 자기찾기 과정에 초점을 맞춰 혈연이나 가족에 초점을 맞춰오던 기존 입양아 프로들과 차별성을 이뤄냈다. 〈김희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