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 형편이 말이 아니다. 똘똘 뭉쳐도 어려운 마당에 집안끼리 치고 받느라 쪽박 깨지는 소리만 요란하다. 이러다가 당이 두쪽 날지 아니면 용케도 내분을 추스르고 선거전에 임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어쨌거나 창당 이래 최대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된 데는 우선 이회창(李會昌)대표의 책임이 크다. 두 아들의 병역문제도 그렇지만 정치력 부족과 잇따른 자충수가 갈수록 사태를 악화시켜 놓았다. 두 전직 대통령의 추석 전 사면론만 해도 그런 식으로 서툴게 접근할 일이 아니었다. 깜짝카드로 국면을 타개하려다 오히려 후보교체론에 부채질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른바 7인방의 측근정치 행태도 그렇다. 3김정치 청산을 외치면서 밀실 측근정치에 맛들인다면 3김들의 가신(家臣)정치와 무엇이 다른가. ▼ 쪽박깨지는 소리 요란 ▼ 그렇다고 비주류측의 「이회창흔들기」도 온전한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경선으로 일단 후보자를 뽑았으면 다함께 승복하고 힘을 합쳐 밀어줘야 한다는 것은 정당의 기본 상식이다. 자기 당 후보가 다른 당 후보보다 여론조사에서 뒤진다고 교체론을 제기한다면 정당은 설 땅이 없다. 페어플레이와 결과승복이라는 경선원칙조차 지켜지지 않는 정당은 민주정당이 아니다. 결선투표에서 이회창씨에게 패배한 이인제(李仁濟)씨는 내주초 경기도지사직을 사퇴한 뒤 상황을 보아가며 독자출마나 신당창당 여부를 결정할 모양이다. 이런 난기류 속에 신한국당 사람들은 어느 쪽에 줄을 서야 할지 눈치보기 바쁘다. 기회주의가 피워내는 안개만 자욱할 뿐 어느 하나 확실한 것이 없다. 어쩌다가 신한국당이 이런 콩가루 정당이 돼버렸는지 한심하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경선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서약서를 수없이 쓰고도 딴 생각을 품는다면 당인(黨人)의 도리가 아니다. 무슨 명분을 내세우든 당당하지 못함은 스스로도 잘 알 것이다. 영국이나 미국에서 정치인들이 무조건 경선 결과에 승복하는 것은 도덕군자들이어서가 아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정치생명이 끊어지기 때문이다.유권자들이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 유권자들도 경마구경하듯 할 게 아니다. 집권당이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법도 없다. 후보자를 중심으로 최선을 다하고 그래도 안되면 깨끗하게 정권을 물려주고 다음을 기약하는 것, 이것이 민주정치의 원칙이다. 이런 결의와 각오가 없다면 지금의 집권당도 대선에서 질 경우 또하나의 포말(泡沫)정당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다른 정당들도 그렇지만 신한국당은 기본적으로 이념과 정책으로 뭉친 정당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7년9개월 전의 3당합당은 권력도모를 위한 세(勢)불리기 야합이었다. 내홍(內訌)의 뿌리는 거기에 있다. 그러고도 계속된 이질요소들의 마구잡이 영입으로 비빔밥 정당이 돼버렸다. 이해가 상충할 때마다 내분이 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도당(徒黨)이나 해바라기집단이라고 이름붙여도 할말이 없게 되었다. ▼ 지고도 이기는 정치를 ▼ 어느 정치학자는 「정당은 현대의 군주」라고 했다. 정당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일 것이다. 또 정치학 교과서에는 「정당이란 정책과 이념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 뭉친 결사」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이념과 정책은 어디로 가버리고 오로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정권을 잡기 위한」 사당(私黨)들만 판을 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정당다운 정당이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부실기업들이 경제를 망치듯 부실정당은 부실정치를 낳고 마침내 나라를 어지럽힌다. 정치를 책임지고 있는 지도자들도 같은 생각이라면 지금부터라도 정당정치의 원리로 돌아가 그 원칙에 충실할 일이다. 그러는 것이 당장은 지는 것 같아도 길게 보면 이기는 것이다. 남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