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매일 매일 찾아오는 아침이지만 나에게는 늘 새로움의 시작이다. 잉크냄새가 날 것만 같은 조간신문을 펄치면서 하루 일과를 손꼽아본다. 이런 시간 내가 좋아하는 칼 라일의 시구를 버릇처럼 외워본다. 「자, 오늘도 또 한번 파아란 날이 샜다/생각하라, 네 어찌 이날을/헛되이 놓쳐 보내랴…」. ▼ 늘 새롭게 다가오는 아침 ▼ 이촌동에서 여의도까지. 길은 훤히 트여 있고, 거침없이 달려 KBS 현관으로 들어선다. 아침에 만나는 낯익은 얼굴들이 정겹다. 아침을 여는 KBS 제1라디오의 첫 생방송 「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의 제작팀 모두가 저마다 준비에 허둥대며 바쁘다. 방송이 함께 만들어가는 종합예술임을 실감하는 시간이다. 6시30분 시그널이 켜질 때까지 마치 외과수술을 앞둔 한무리의 의료진처럼 우린 서로 말없이 눈짓만으로 손발을 맞춘다. 「오늘은 어떤 한마디 말로 아침을 열까」 「말은 아끼되 촌철살인의 극명한 메시지를 담아야 할텐데…」. 3년 넘게 맞아온 순간인데도 왜 이리도 긴장이 되는지 애교처럼 버릇처럼 더듬거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가슴 벅찬 시간. 정직하게 땀흘리는 사람들과 하루를 같이 간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에게 밝은 예감을 안겨주고 공감을 함께 나눈다는 기쁨이 확인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침을 생명의 본질로서 어느 정도까지는 신성한 것으로 여겨라」. 쇼펜하워의 이런 경구도 인용하고, 「하늘에는 별이 있고, 땅에는 꽃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괴테의 어록도 곁들이고, 가끔 제자백가의 말씀도 빌려오면서 제법 아는 체도 해본다. 그러나 음식에 조미료가 빠질 수 없듯이 내 특유의 독설을 빼놓을 수가 없다. 「적과 동지가 따로 없는 비정한 정치판, 대의(大義)와 정도(正道)는 어디에 팔아버렸느냐」고 애청자를 대신해 일침을 가하면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 마음이 후련해진다. 8시30분. 출근하는 인파를 헤치고 서둘러 방송국을 나서는 시간. 학생들이 기다리는 대학으로 향하는 길이 또 다른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연속강의 3시간. 아직도 젊다는 것을 보여주기에는 조금은 벅찬 시간. 하지만 평생 입으로 지껄이며 여기까지 왔는데 그것이 대수랴. 12시경. 동료교수들과 교수식당으로 몰려가 2천원짜리 밥을 먹는다. 아침방송 끝에 방송국 지하식당에서 먹던 2천원짜리 밥과 어쩌면 그렇게도 똑같은가. 순간 집 밖에서 2천원짜리 아침과 점심을 먹는 내 자신이 측은하게도 여겨진다. 요즘 대한민국 땅에 2천원짜리 밥으로 두끼니를 때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 마지막 날인듯 살아야… ▼ 그러나 며칠 전 세상을 떠난 테레사수녀의 말이 떠올라 마지막 수저를 놓으며 눈을 감게 된다. 『나의 입원 치료비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처럼 죽어가게 해달라』 사는 것이 무엇이랴. 인생은 풀잎 끝에 맺힌 아침이슬이라 하지 않았나. 인생은 미워하며 살기에는 길지만 사랑하며 살기에는 너무 짧은 것이다. 테레사수녀도 『우리는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잠자리에 들며 내일 아침 방송에는 이런 「여명의 인사」로 하루를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충실하게 지낸 오늘은 어제를 행복한 꿈이게 하고/내일은 희망이 넘친 환상이게 한다/그대여 보라/오늘을 인식하자/하여 여명에의 인사를 하자」. 봉두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