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씨의 출마 여부가 태풍의 눈이 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출마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가 지배적인 것처럼 보인다. 부정적인 견해는 크게 두가지 근거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집권당 최초의 대통령후보 경선결과가 절대 존중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민선 도지사로서 지역주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도중 하차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출마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두가지 근거는 모두 「정치인의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는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결코 소홀하게 다룰 수 없는 중요한 당위를 함축하고 있다. 「경선결과 승복」과 「민선 도지사 임기」는 각각 「국민」과 「지역주민」을 상대로 정치인 이인제씨가 공개적으로 약속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 이인제씨는 「왜」 입장을 바꾸어 출마를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가. 직접적인 원인은 경선을 거친 이회창 후보가 본선의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정권획득을 목표로 존재하는 정당이 선거에 질 게 뻔한 후보를 경선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작정 앞장세울 수 없다는 것이 이인제씨의 생각인 것 같다. 상황이 바뀌었으면 경선결과도 번복할 수 있다는 주장일 것이다. 그런데 신한국당이 요지부동이니 탈당하여 직접 본선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인 것 같다. 명분이 없지 않다. 정치인의 신의에 관한 한 한국의 정치현실은 이인제씨의 경우만을 탓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며 하루아침에 3당통합을 하여 야당에서 여당으로 변신한 일을 벌써 잊은 국민은 아무도 없다.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 또한 「모든 책임을 지고 정계를 은퇴한다」며 영국으로 표표히 떠났다가 돌아온 경력을 국민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김종필 자민련 후보는 정치적 변신에 관한 한 대한민국의 어떤 정치인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화려한 경력을 소유하고 있다. 사정이 이럴진대 이인제씨에게만 정치적 신의를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며 대선출마를 못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말할 것도 없이 그의 출마로 타격을 받을 정치집단이 자구책의 여론몰이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인제씨의 출마에 문제가 있다면 국민적 지지도가 가장 높았던 그를 후보로 선택하지 않은 신한국당도 책임을 져야 한다. 지구당위원장을 통해 상의하달을 하며 대의원들에게 줄서기를 강요했던 한국 정당들의 비민주적 관행이 이번 기회에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져야 한다. 이인제씨의 정치적 배신은 이러한 기형적 정당구조의 필연적 결과일 뿐이다. 이인제씨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의 출마가 여권성향의 표를 분산시키며 고정표를 가진 야당에 도움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또한 현재의 여론조사 결과를 웃도는 선전을 하며 그가 당선권에 진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거꾸로 그가 주저앉는다고 하여 이회창 후보의 당선이 보장되는 상황도 아니다. 이인제씨의 도박이 가져 올 결과는 오직 국민만이 알고 있다. 유석춘(연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