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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심 칼럼]뿌린대로 거두기

입력 | 1997-09-26 20:31:00


솔개는 본래 목소리가 백조처럼 맑았다. 그러나 말이 우는 소리를 듣고는 그 힘찬 소리가 부러워서 말 울음 소리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백조처럼 맑은 목소리를 잃어버렸다. 결국 솔개는 말 울음 소리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본래 제가 가지고 있던 맑은 목소리도 잃어버렸다. 이솝우화 한토막이다. 요즘 비바람 몰아치는 황야에 홀로 서 있는 나무처럼 고단한 이회창(李會昌)씨가 그 솔개를 닮았다는 느낌이다. ▼ 이회창씨의 참담한 反轉 ▼ 이회창씨가 짧은 정치인 생활에서 천상과 지하를 오가는 참담한 반전(反轉)을 맛보고 있는 것은 뿌린 대로 거두는 형국이다. 이씨가 온실과도 같은 판사실을 벗어나 잡초 무성한 정계에 뛰어들기 무섭게 여당 대통령후보에 오른 것은 그의 백조처럼 맑은 목소리 덕이었다. 반칙과 음모, 변절과 야합, 불법과 부패가 어지럽게 춤추는 정치판에서 그는 참신한 대쪽 원칙으로 여당 대통령후보 경선을 가볍게 통과했다. 시련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왔다. 아들 병역문제로 민심이 돌아서고 인기가 추락했다. 당황한 솔개는 백조의 목소리를 버리고 말 울음을 흉내내려 했다. 대통합이라는 이름으로 시대착오적 보수대연합론에 한다리 걸쳐보기도 하고 김영삼(金泳三)정권의 자랑거리인 역사바로세우기를 폐기하려는 역린(逆鱗)을 건드리기도 했다. 결과는 사면초가였다. 말 울음도 배우지 못하고 백조의 목소리도 잃어버린 솔개 신세가 된 것이다. 만각(晩覺)일까, 한바탕 홍역을 치르면서 이씨 주변에서는 이씨에게 초심(初心)으로 돌아갈 것을 권고한다는 보도다. 표류하는 신한국호를 끌고 나갈 파천황의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지금 이씨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있는 후보교체론 보수대연합론 민주대연합론 신당창당론 이인제(李仁濟)씨와의 재결합론 등등 흉흉한 계책들은 한마디로 정권교체를 두려워하는 여당의 불안 초조를 반영하는 비현실적이고 부도덕한 모색들일 뿐이다. 선진국 민주정당에서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자유경선을 통해 선출한 대통령후보에게 사퇴를 강박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힘을 합치는 것이 민주정당의 상식이다. 이씨의 인기에 치명적 상처를 입힌 아들 병역문제는 경선 당시 이미 노출돼 있었다. 그런데도 신한국당은 그를 정해진 절차를 밟아 대통령후보로 선출했다. 그 책임은 신한국당 당원 모두에게 있다. 이제 와서 잘못된 결정이라고 번복하자는 주장은 몰상식하다. 뿌린 대로 거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문제는 사태를 그렇게 정리하고 반전시킬 이회창씨의 정치력이다. 백조의 소리를 내든 말 울음 소리를 내든 자신의 정체(正體)부터 분명히 정립하고 넓은 포용과 성실한 설득으로 당력을 결집하는 기민한 위기관리능력을 보이지 않고는 이씨는 당원은 물론 국민으로부터도 지도력에 대한 신뢰감을 얻지 못한다. 다만 원칙을 훼손하지 않고 때로는 강직하게, 때로는 유연하게 능굴능신(能屈能伸)하는 프로의 정치력을 단시일에 몸에 익힌다는 것이 아마추어 티를 벗지 못한 이씨에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 어려울수록 正道 택해야 ▼ 어려울수록 정도(正道)를 택하라고 했다. 길을 모를 때는 아는 사람에게 묻는 것도 지혜다. 그런 점에서 이씨가 차별성을 내세워 김영삼대통령과 속절없이 결별하는 것이 정치 9단인 그에게 한수 배우는 것보다 지혜로운 선택인가를 묻는 일부 신한국당 당원들의 충고는 이씨에게 약이 될지 모른다. 이씨가 민주적 경선을 거친 여당의 당당한 후보로서 야당후보와 깨끗하게 한판 겨루는 것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김종심(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