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뚝섬 경마장터에서 건국대에 이르는 일대를 옛날에는 살곶이들(전관평·箭串坪)이라고 했다. 지금은 주택과 공장이 빽빽하지만 옛날에는 중랑천과 한강 사이의 저지대로 풀이 무성했다.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사냥터로 이용되면서 화살에 맞은 새가 떨어지는 곳이라 해서 살곶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정종이 아우 이방원(李芳遠)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이곳에 낙천정(樂天亭)을 짓고 자주 들렀다. 그후 화양정(華陽亭) 성덕정(聖德亭) 등의 왕실정자가 세워지고 태종 이방원과 세종도 자주 놀러다녔다. 그때마다 중랑천을 건너기가 힘들어 세종2년(1420) 이 돌다리를 짓기 시작해 성종14년(1483)에 완성했다. 살곶이다리는 전통양식으로 지어진 다리중 서울에서 가장 긴 78m에 이르며 한양성 동쪽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가 됐다. 살곶이는 오랫동안 왕실의 말목장과 왕의 군대사열장으로 사용되다가 조선왕조 멸망 후 골프장 경마장 대공원 공장 등이 차례로 들어서고 화양동사무소 부근의 화양정과 성덕정 자리에는 주택이 들어섰다. 현재는 경마장마저 없어지고 그 자리의 일부에 대규모 돔구장이 건립될 예정이며 나머지 부지는 서울시청의 신청사 후보지 중 하나로 남아있다. 살곶이다리는 1973년 수리 복원됐고 낙천정은 91년에 새로 지어졌다. 살곶이의 유래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봄 중랑천 시민공원에서는 전통 활쏘기대회와 살곶이다리밟기 행사가 열린다. 〈조병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