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지배하에서 조선이 경제적으로 수탈만 당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성장했다는 논리를 전개한 일본학자들의 글을 최근 읽으며 한참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1911년에서 38년까지 조선경제는 연평균 3.7%나 성장했다고 했다. 나아가서는 이렇게 축적된 힘이 1960년대 이후 한국의 발전과도 연계된다는 것이었다. ▼日帝 긍정 일본의 논리 한숨 ▼ 그 논리는 참으로 명쾌했다. 그러나 곧 그것이 어쩐지 오랫동안 우리가 「망언」이라고 해온 일본측 발언, 즉 일본이 식민지 지배는 했지만 한국을 근대화시켜주지 않았는가 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런 성장이 일제 지배라는 가혹한 조건하에서도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던 조선 백성이 이룩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지배의 통치자와 그들의 정책 덕분이었다고 논증할 때는 정말 긴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서너 마지기나 되었을까 하는 소작농토에서 그래도 조금이나마 소출을 더한다고 이른 새벽에 힘겹게 거름을 나르던 여인들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덕택으로 가을에 한두 섬의 벼라도 더 얻게 되면 자식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기뻐하던 조선의 어머니. 그렇게 해서 이룩한 「경제성장」이 일제의 통치가 옳았기 때문이라는 것인가. 자식에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라도 줘서 그 빈곤과 모욕의 나날을 면해보려고 한 것이었는데. 그런 힘이 일제하에서도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역경을 이겨내게 하였으며 이정도나마 교육을 받게 하였고 가난한 살림을 꾸려나가도록 한 것이 아닐까. 그런 민족의 에너지가 해방 후의 가시밭길 역사 속에서도 우리를 살아남을 수 있게 했고 지금만큼이라도 살아갈 수 있게 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정말 「경제학적」으로는 실증될 수 없는 터무니없는 논리라고 해야하는 것일까. 거친 수난의 역사도 보기에 따라서는 저주할 것이 아니라 축복이라고 해야할 때도 있다. 그 고난을 이겨냄으로써 크게 성장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인 사회에서라면 무난한 인생을 마쳤을 텐데 거기서 쓰러지고 상처를 입었는가. 지나간 역사를 보는 눈은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한다. 어떤 경우에는 동일한 역사가에게서도 시기에 따라서 다른 견해를 보게 된다. 2차대전에 패망했을 때는 어두운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던 일본의 역사가들이 경제대국이 되니까 일본사 찬양으로 바뀌던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물음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어째서 요즘 이처럼 일제 지배하의 역사를 긍정하는 듯하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역사가 쓰여지는 것일까. 실증적으로 숫자나 자료를 보면 「수탈」이 아니라고 과학적으로 말할 수 있다는 듯이 들려온다. ▼ 가려진 역사를 찾자 ▼ 역사를 한다면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는 것이지만 요즘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대립된 역사관을 한번 상기해 보고 싶다. 역사에는 주인의 이야기가 있고 하인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지배하는 자의 관점이 있고 지배받는 자의 관점이 있다. 이긴 자와 진 자의 역사관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세계적으로 새로운 역사관이란 후자의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가려진 역사를 새로이 발굴하고 역사를 다시 써야한다고들 말한다. 그것은 단지 지난날의 역사에 대한 학문적인 자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보고 실천을 자아내느냐 하는 것과도 관련된다. 사랑의 화신처럼 살다간 여인, 시몬 베유를 생각하게 된다. 「역사란 살인자가 그 희생자와 자신들의 일에 관하여 만들어낸 진술」이라고까지 한 그의 처절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지명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