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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과 삶/몸]「영혼의 감옥」인가,「정신의 원형」인가

입력 | 1997-10-14 07:59:00


몸에 대한 학문적 관심과 논란이 뜨겁다. 어디서 시작해 어디로 귀착하는 담론인가.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이고 욕망은 우선 몸에서 비롯한다. 인간의 몸은 욕망의 바탕이자 최초의 발현(發現)장소이다. 거리를 걷거나 TV 영화를 보아도, 사람을 만나거나 잡지를 펼쳐도 온통 몸이다. 다이어트 성형수술 에어로빅 선탠 미스코리아 슈퍼모델, 게다가 남자의 성형수술까지. 몸에 대한 관심은 남녀 구분을 넘어선 지 이미 오래다. 이같은 몸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몸을 다듬고 몸을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자 한다. 「몸」은 이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연구자들의 관심사가 된 것이다. 몸은 정녕 꿈을 실현하는 매개물인가. 아니면 이성(정신)의 몰락 위에 쓸쓸히 남게 될 욕망의 껍데기인가. 인간은 기본적으로 육체에 의지해 살아가면서도 육체를 너무 간과해 왔다. 플라톤 이래 서양철학사에서 육체는 진리를 위해 극복돼야할 대상, 「영혼의 감옥」 정도로 비하돼 왔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도 몸 경시의 한 표현이다. 정신을 중시하고 육체를 가볍게 여기는 이러한 이분법은 서구 근대이성중심주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이성 정신 우위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왜 몸이 이 시대의 주된 담론거리가 된 것일까. 첫째 이유로 폭발적인 소비문화를 들 수 있다. 후기자본주의사회의 속성상 소비는 필연적이고 그 소비는 물질과 육체에 대한 욕망으로 나타난다. 포스트모더니즘 열기도 몸 담론을 뒷받침한다. 인간 이성을 신뢰하는 형이상학에 도전장을 내면서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에 억압당했던 낭만적인 감성과 육체를 주요 테마로 내세웠다. 둘째, 가부장적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몸이 어떻게 통제되고 착취당해 왔는지를 논의하는 페미니즘운동의 확산 역시 또 하나의 이유로 꼽힌다. 셋째, 환경오염에서 비롯된 기형아 탄생, 인공장기의 등장으로 인해 몸에 대한 고전적인 시각이 무너지고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됐다는 점도 몸 담론의 확산을 재촉했다. 이밖에 사이버스페이스와 가상인물인 사이버스타의 출현으로 신체의 위상이 흔들린다는 사실도 몸담론의 배경이라고들 말한다. 이처럼 몸은 더이상 내버려둘 존재가 아니다.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그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진지하게 검토해야할 대상으로 떠올라 이른바 몸학, 신체론이란 이름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몸을 억압하던 서양철학사에서 신체론은 60년대 전후 프랑스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대표주자는 메를로 퐁티와 미셸 푸코. 현상학자 퐁티는 「행동은 육체적인 것만은 아니며 사유 역시 정신적인 것만이 아니다. 인식의 궁극적인 완성은 몸의 지각을 통해 이뤄진다」고 보았다. 푸코는 계몽사상의 기치를 내걸었던 18세기 서구에서 권력과 근대적 제도(감옥 병원 등)에 의해 인간의 몸이 어떻게 통제되고 억압돼 왔는지를 예리하게 고찰, 신체론의 새 지평을 열었다. 푸코의 시각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신체론의 초점은 바로 여성의 몸. 후기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 여성들은 몸만들기 전쟁에 내몰리고 있다. 그러나 이른바 「몸의 이상형」이란 것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버린다. 따라서 그 이상을 실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즉 패배가 예정된 싸움이고 그러다보니 결국 몸으로부터 소외되고 극단적으론 자아분열에 이르기도 한다. 물론 몸만들기는 여성의 정체성을 고양하고 성적해방이란 상징을 통해 자연적 본능 그 자체로 복원시킨다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다. 그러나 여성의 인격을 부정하고 성적인 측면만을 부각함으로써 자본주의사회의 남성중심적 욕망에 굴복하고 나아가 하나의 소비재로 전락하는 결과를 자초할 것이란 우려가 더 크다. 독일의 문예비평가 마르쿠제는 『현대의 성해방이나 성쾌락은 또다른 유형의 복종을 만들어 낸다』고 지적한 바 있다. 최근 들어 국내 학계의 몸연구는 「기(氣)철학」을 중심으로 한 전통 신체론의 복원에 집중되는 양상이다. 이러한 논의는 신체론 몸학이 서구의 것이 아니라 본시 우리의 전통철학과 의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이해에서 출발한다. 이정우 서강대교수(철학)는 『조선후기 철학자인 최한기 등을 통해 발전했던 전통 기철학의 복구, 신체와 권력과의 관계, 사이버스페이스 시대 신체의 위상 등 사회역사적 탐구가 몸학의 핵심과제』라고 전망한다. 몸. 몸에 대한 욕망의 폭발, 거부할 수 없는 몸의 시대. 그러나 지성들은 「육체의 해방」이라는 낙관론에 쉽게 경도되지 않는다. 몸의 붐이 상업적 소비적 차원을 넘어서야 하고 그래야만 몸학의 궁극적 목표인 「육체와 정신의 행복한 만남」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광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