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의 한 연구」 박상륭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 박상륭을 떠올릴 적마다 생각나는 불경의 한 구절이 있다. 「사자가 한번 울부짖으니 여우의 머릿골이 찢어지도다」. 박상륭, 그는 1960년대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한국문학계의 평원을 내달리던 한마리 사자였다. 그 사자가 울 때마다 사람들은 기존의 한국문학이 감히 접근조차 하지 못했던 광활한 신천지가 돌연 눈앞에 펼쳐짐을 깨닫고 놀라곤 했다. 그런 그는 홀연 70년대의 개막과 함께 한마리 대붕(大鵬)으로 변해 이 땅을 떠나 태평양 건너 먼 이국으로 날아가버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긴 침묵. 많은 사람들이 그를 잊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고자 하지도 않는 세상이 도래했다. 그러나 사자의 목쉰 울음소리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죽음의 한 연구」에서 「칠조어론」으로 이어지는 그의 중단없는 소설 작업은 이 땅에 붙박여 아등바등 살아가기에 바쁜 소심한 여우들의 내면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는 여전히 사자였고 대붕이었다. 그의 「대붕문학」에 비하면 이 땅에서 행해진 숱한 글쓰기는 「좁쌀문학」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야 될 것이다. 신화와 종교를 영토로 삼고 있는 그의 소설은 스케일의 거대함이나 사유의 심오함만으로 읽는 사람을 압도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소설의 독특한 향취 중 하나는 야만성의 적나라한 현현에 있다. 삶의 의미에 대한 뜨거운 추구와 탐색은 그 극한에 이르러 원형적인 벌거벗음의 상태, 동물적 욕망의 폭발과 광란의 상태에 도달한다. 거기선 살인 방화 강간 같은 끔찍한 일들이 태연히 저질러지며 몰아의 황홀경과 처참한 살육이 동시적으로 벌어진다. 박상륭이 걷는 구도의 길은 맑고 화사한 탈속의 세계가 아니라 어지럽고 혼탁한 난장의 현실을 가로지른다. 「유리」라는 가공의 무대를 배경으로 40일이라는 기간에 진행되는 「죽음의 한 연구」는 주인공이 온몸으로 치러내는 삶과 죽음의 드라마를 통해 육체를 입고 이 땅에 태어난 존재들이 겪는 고통과 환희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주인공은 그 육체를 끝까지 살아냄으로써 육체를 넘어 나아갈 수 있는, 다시 말해 불멸에 이를 수 있는 길 하나를 간신히 튼다. 그 과정은 처절하고, 그만큼 아름답기도 하다. 남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