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오프가 처음 열린 것은 86년. 한국야구위원회는 전해인 85년 삼성의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 한국시리즈가 아예 열리지 않게 되자 제7구단 빙그레의 합류를 구실로 플레이오프 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포스트시즌은 전후기 종합 승률 1위팀이 한국시리즈에 직행하고 이 팀을 제외한 전기와 후기 선두팀이 5판3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치르도록 한 것. 첫 해인 86년에는 전후기 각 2위를 차지한 해태가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가운데 김영덕감독의 삼성이 재일동포 왼손투수 김일융의 2연속 완투승에 힘입어 OB를 3승2패로 제압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페넌트레이스의 귀재지만 한국시리즈에선 단 한번도 우승컵을 안아보지 못한 김영덕씨(현 LG 2군감독)는 플레이오프에서 만큼은 맹위를 떨쳤다. 그는 86년과 빙그레 시절인 88,91년에 한국시리즈 벤치에 앉았다. 반면 김성근감독(현 쌍방울)은 86년과 87년 OB, 89년 태평양, 91년 삼성, 지난해 쌍방울등 네 번이나 유니폼을 갈아 입으면서 플레이오프 전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정동진씨(현 SBS해설위원)도 특이한 경우. 그는 90년 삼성에서 김응룡감독의 해태에, 94년 태평양에선 강병철감독의 빙그레에 3연승하며 한국시리즈에 올라갔지만 그때마다 LG에 4연패를 당해 중도퇴임을 자초하고 말았다. 한편 「한국시리즈 징크스」에 시달렸던 선동렬(현 주니치 드래건스)은 89년 해태가 태평양에 3연승할 때 1,3차전에서 구원승을 따내 그런대로 제 몫을 해냈다. 89년부터 단일시즌제가 채택되면서 준플레이오프 제도가 생겨났다. 사상 처음으로 3위 롯데와 4위 해태의 승차가 3게임 이상 벌어진 그 해에는 준플레이오프가 무산돼 롯데는 2위 LG와 7전4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치렀다. 또 지난해에는 쌍방울이 해태에 먼저 2승을 거두고도 3연패, 플레이오프에선 유일하게 1차전 승리팀이 우승하지 못하는 전례를 남기기도 했다. 〈대구〓장환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