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돈을 갚겠다」는 약속은 사사로운 거래에서도 구속력을 갖는다. 내로라하는 상장회사가 수많은 주주들에게 한 약속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레이디가구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선 중원의 사례에선 그게 아니었다. 중원은 두양산업 대성주유기 등과 함께 레이디가구 주식 공개매수에 나서 5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한 상장회사. 공개매수에는 1천여명의 레이디가구 주주들이 목표량의 2.5배가 넘는 1백20만주를 사달라고 청약했다. 문제는 곧바로 터져나왔다. 당초 2일로 예정된 공개매수대금 결제일을 14일로 일방적으로 연기한 것. 중원의 이재희(李在熙)사장은 『자금시장 경색으로 자금조달계획에 차질이 생겨 어쩔 수 없이 대금지급 기일을 연기하게 됐다』며 사과했다. 손해가 날 경우 배상하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돈이 없다던 중원은 뜻밖에도 공개매수기간중 개인휴대통신(PCS)업체인 한국통신프리텔과 한솔PCS에 1백28억여원을 출자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사장은 『PCS업체에 출자한 것은 이를 담보로 은행대출을 받기 위한 수단이다. 빚을 갚는 방법은 여러가지』라고 「해명」했다. 막상 14일이 되자 중원은 『돈이 없다』며 다시 나앉았다. 이번엔 단 한 마디의 사과도 없었다. 책임있는 임원들은 빗발치는 항의전화를 피해 모두 자리를 비웠다. 주당 8만원(공개매수가격)에 넘겼던 주식을 1만7천원대에 돌려받게 된 주주들은 『상장사한테까지 속는다면 도대체 누굴 믿어야 하느냐』고 분개하면서 손해배상소송을 낼 움직임을 보였다. 「중원 사례」는 증권거래법 위반(대금지급 연기)에 따른 제재만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상장사가 「다른 주머니」를 차면서 약속을 저버렸고 이로 인해 이제 막 태어난 M&A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정경준(경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