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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로 만난 『응원 국가대표』 「붉은 악마」

입력 | 1997-10-14 19:56:00


축구경기장을 붉은 파도로 뒤덮으며 상대팀 응원단을 압도하는 「붉은 악마」. 불길같은 현란한 응원과 축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강한 인상을 심어주면서 출전선수만큼이나 온 국민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들의 열광적인 응원은 대체 어디서 솟아난 것일까. 해답은 사이버 그라운드를 누비며 PC통신 축구동호회에서 다진 네티즌 특유의 팀워크에 있다. 95년 축구를 좋아하는 네티즌들이 PC통신 축구동호회에 모여 들기 시작했다. 축구 관련 정보를 교환하면서 주말에는 축구경기도 벌이던 이 동호회에는 올들어 국내 프로축구단의 응원모임이 하나 둘 씩 생겨났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잘못된 축구 관람 문화를 개선하고 프로축구의 활성화에 작은 보탬이 되고자 하는 뜻에서 모여들었다. 소주를 마시고 벌개진 얼굴로 야유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온 관중이 한마음으로 축구를 즐길 수 있는 진정한 응원을 펼쳐보자는 의도였다. 처음에는 PC통신으로 얘기를 나누다 『몇월 몇일 운동장에서 봅시다』라고 즉석에서 약속해 만나는 이른바 「번개모임」으로 출발했다. 그러다 각 구단을 조직적으로 응원하는 그룹이 활성화됐고 다함께 뭉쳐 국가대표팀을 응원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PC통신으로 공모해 「붉은 악마」라는 이름을 정했다. 8월 잠실운동장에서 열린 브라질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첫 모습을 보였고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대 일본전에서 관심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경기장에서 보는 모습이 「붉은 악마」의 전부는 아니다. 그들은 네티즌의 모임다운 나름대로의 특성을 갖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정보의 유통이 빠르다는 것.해외 스포츠전문지와 국제축구협회(FIF A), 명문 프로구단의 홈페이지를 수시로 검색해 최신 정보를 얻는다. 또 각자 수집한 정보를 우리말로 번역해 PC통신에 올리므로 모든 회원들은 세계축구계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읽을 수 있다. 「붉은 악마」는 운영에 있어서도 전자민주주의에 충실하고 있다. 모든 사안은 PC통신에서 난상토론을 거친 뒤 결정된다. 최근 여러 기업에서 상업광고에 출연해달라는 「유혹」이 들어왔을 때도 이같은 과정을 거쳐 결정했다. 「붉은 악마」의 상품가치에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는 것은 당연한 일. 스포츠용품 회사는 물론이고 음료 주류 캐릭터업체 등에서부터 보험회사까지 접근해왔다. 하지만 네티즌으로서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모두 거절했다. 「붉은 악마」의 한 운영위원은 『조건없이 지원해주겠다는 제의도 있었지만 이마저도 단호히 거부했다』고 말했다. 운영진은 또 「붉은 악마」가 대중에 널리 알려지기 전에 미리 상표권을 등록해 고유한 이름이 도용당하는 것을 막는 면밀함도 보였다. 「붉은 악마」가 소속된 PC통신 축구동호회는 요즘 매일 새 회원이 3백∼4백명씩 가입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전체 회원 수도 1만5천여명을 넘어섰다. 회원이 늘다보니 골치아픈 문제도 생겼다. 「예선전 입장권이나 얻어볼까」하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신참들이 대표적인 경우였다. 입장권 배분을 놓고 말썽이 일자 운영진은 프로축구경기의 관전횟수와 응원준비의 참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입장권을 나눠주기로 했다. 경기장에 붉은 옷을 입고 입장한 사람은 PC통신 축구동호회원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붉은 악마」에 가입할 수 있다. 굳이 조건을 들자면 △경기 후 주위를 청소할 것 △지더라도 야유를 하지 말 것 △좋아하는 프로축구팀을 하나씩 가질 것 등이다. 〈김홍중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