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때쯤이면 스웨덴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이 소식은 연례행사처럼 신문과 방송에 크게 보도된다. 그러나 이곳 미국 시민들은 노벨상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다. 그래서 수상자를 잘 알지 못한다. 한국과는 큰 차이다. 한국에서는 어릴 때부터 귀가 닳도록 듣는 소리가 있다. 바로 노벨상이다. 정초에 세배를 드리면 어른들은 노벨상을 탈 수 있는 과학자가 되라고 한다. 초중고교뿐 아니라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줄곧 듣는 소리도 바로 이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유학을 떠날 때도 공항에 나온 친지들은 노벨상을 타오라고 한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서너 개를 말이다. 마치 올림픽경기에서 한 선수가 몇 개의 금메달을 따는 식이다. 해외에서 성공한 유명 과학자가 가끔 모국을 방문하면 모두들 언제 노벨상을 타느냐고 난리다. 유명한 재벌총수가 한미과학협회에서 연설을 하면서 『우리 회사 자동차는 세계 방방곡곡에 수출되는데 한국 출신 과학자는 언제 노벨상을 타느냐』고 불평하던 일이 아직도 생각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한국에서는 대학 등이 많은 돈을 들여 노벨상 수상자를 초청, 강연을 듣는 행사를 종종 마련한다. 그러나 강연 제목이 실제로 학교나 학계와는 밀접한 관계가 없는 경우가 적지 않아 마치 수상자의 초청강연 그 자체가 목적인 경우처럼 비쳐지기까지 한다. 심지어 어떤 교수는 자기가 노벨상 수상자 후보로 심사위원회에 지명되었다고 소문을 내거나 언론에 흘릴 정도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소문이 나온 뒤 실제로 수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국에서 노벨상 환상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과거의 모든 노벨상 수상자들이 상을 탈 목적으로 일평생 과학에 매진하였을까. 사실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나 사업을 열심히 하던 중 남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을 발견하여 발표했던 것이고 그후 최소 10년 정도의 세월이 지난 다음 학계의 인정을 받아 상을 타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노벨상을 받게 된 데는 무엇보다 행운이 필요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 노벨상을 탈만한 업적을 내놓았으면서도 수상자로 결정 되지 않은 과학자들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나라 사람들도 노벨상 노래만 부르지 말자. 꾸준히 일하면서 창의력을 기르는 자세가 아쉽다. 최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