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이 섹스는 짐노페디 같은 느낌이야, 하고 그녀는 밀어넣어지면서 생각했다. 간결하지도 들뜨지도 않는 묘한 느낌. 남자가 아무리 그녀 속을 비집고 있어도, 남자는 그녀 속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는 느낌이 남자의 얼굴을 볼 때마다 문득 느껴지는 것이었다』 허무하다. 그리고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처럼 비현실적이다. 삼성문예상 장편소설상 당선작 문성혜씨(33)의 장편소설 「그린란드에도 꽃은 핀다」(문학사상사)는 모든 것이 물화(物化)된 세계다. 문화적 기호나 상품에 의해 만들어지는 다양한 이미지와 불연속적인 의식의 흐름이 있을 뿐 행위의 연속성이나 인과적 논리는 거부된다. 『정말 뜻밖이었어요. 문학공부나 습작을 해 본 적이 없거든요. 소설을 통해 뭔가를 말해야 한다거나 소설을 써야겠다는 강렬한 욕구가 있었던 것도 아니구요. 다만 누구나 한번쯤 자기 삶을 정리해 매듭짓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틈틈이 썼던 일기가 발전해 소설이 된 거죠』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하고 컴퓨터관련 서적을 번역하고 있다는 작가의 이력은 문학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문학수업이라고는 무라카미 하루키, 사뮈엘 베케트, 조셉 콘라드, 티모 브라이언의 소설을 탐독한 것이 전부. 왜 하필 외국소설만을 읽었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진부한 표현을 탈피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익명이다. 컴퓨터프로그래머인 「그녀」와 재일교포 2세인 「A」, 그리고 「그」. 「각자 자신의 둘레에 원을 하나씩 컴퍼스로 그리고 원의 중앙에 앉아 원 밖의 세계에는 최소한도밖에 관여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컴퓨터 데이터처럼 파편화된 그들에게는 가족이라는 끈끈한 유대관계도, 동료도 존재하지 않는다. 상금 5천만원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작가는 『외국에 가서 몇달 살면서 앞으로 존재하게 될 세상에 대해 써 볼 생각』이라고 한다. 〈김세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