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구질의 공을 같은 코스에 던지지 말라」. 9명의 타자와 번갈아 승부해야 하는 투수가 잊지 말아야 할 철칙이 바로 이것이다. 직구든 변화구든 같은 구질의 공을 한 타자에게 같은 코스로 집중시키면 얻어맞는 것은 자명하다. 더구나 한국시리즈와 같이 타자들이 집중력을 갖는 경기에서 투수가 여러 코스를 다양하게 찔러넣지 못하면 타자에게 안타를 내줄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2차전 승부를 가른 것은 이같은 평범한 상식이었다. 승부의 분수령이 된 4회말 LG 공격. 1사 만루에서 베테랑 노찬엽이 동봉철을 대신해 해태 김정수와 맞섰다. 볼카운트 투볼에서 바깥쪽 변화구 스트라이크와 몸쪽 직구가 파울이 되며 2―2. 여기서 김정수가 승부구로 던진 바깥쪽 직구가 빠져 볼카운트 2―3이 됐다. 직구가 제대로 먹히지 않아 고민하던 김정수는 바깥쪽 변화구로 결정구를 삼았으나 이미 변화구를 예상하고 있던 노찬엽이 놓치지 않고 받아쳐 결국 결승 2타점 적시타를 만들어냈다. 직구에 자신이 없는 김정수가 바깥쪽 변화구로만 승부를 건 결과가 돌이킬 수 없는 악수가 된 셈이다. 이 한 승부로 해태는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고 LG타선엔 불이 붙었다. 장호연(야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