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대통령, 박찬호국무총리, 선동렬외무장관…. 12월 대선에서 차라리 이들에게 나라 살림을 맡기자」. 물론 농담이리라. 그러나 이런 우스개같은 이야기를 서슴지 않고 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국민의 생계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오직 대권잡기에만 몰두하는 정치인. 끝없이 추락하는 경제.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신바람나는 일이 없다. 회사원 김문현씨(38)는 『스포츠는 최소한 땀흘린 만큼 결과가 나타난다. 선수들은 결과에 대해서 겸허하게 책임을 지고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어디 그런가. 이젠 그들의 모습만 봐도 짜증이 난다. 차범근 박찬호 선동렬의 모습을 보라. 끓던 울화가 한번에 시원하게 사라진다』고 말했다. 이래서일까. 올 봄부터는 미국프로야구에서 뛰고 있는 박찬호(LA다저스)와 일본프로야구의 선동렬(주니치 드래건스) 신드롬이 거세게 일었다. 이어 월드컵축구 아시아최종예선이 막오른 뒤부터는 차범근 신드롬을 뜻하는 차범근 시리즈가 10대들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차인표보다 잘 생긴 남자는 차범근」 「유동근보다 잉크블루 셔츠가 잘 어울리는 남자는 차범근」 「황수관박사보다 더한 신바람 박사는 차범근」 「대한민국 최고의 기쁨조는 차범근」…. 이런 현상은 바람직한 것일까. 한양대 김정기교수(신문방송학)는 『국민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스포츠스타에 대한 지나친 열광은 국민을 자칫 우민화로 이끌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지적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 바로 방송사의 뉴스보도 태도. 지난달 28일 한일전이 끝난후 MBC TV 9시 「뉴스데스크」는 전체 31분중 20분을 축구소식으로 채웠다. 한국이 아랍에미리트(UAE)를 3대0으로 꺾은 4일 KBS TV 9시뉴스도 29분가운데 20분동안 축구로 얘기꽃을 피웠다. 브라질에서 살다가 온 서울 대치동의 박모씨(41)는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도 이런 일은 극히 드문 예』라고 지적했다. 주가가 바닥을 모르고 곤두박질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굵직굵직한 기업들이 잇따라 쓰러지고 이 와중에 미국은 한국차에 대해 슈퍼 301조를 들이밀고 있다. 「차범근대통령」이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박찬호총리」면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답답한 마음에 하는 소리일 게다. 〈김화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