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년 조세형이라는 이름의 도둑이 서울지방법원 구치감에서 탈주하면서 장안이 발칵 뒤집혔다. 교도관들의 감시를 피해 수갑을 풀고 구치감 환기창을 통해 달아난 재주도 대단하려니와 도둑질에도 신출귀몰한 솜씨를 지닌 대도(大盜)였다. 전직장관 국회의원 재벌회장집만을 골라 값진 귀금속 6백여점을 털었고 훔친 보석을 장물아비에게 헐값에 넘기지 않고 재가공해서 제값을 받고 팔았다. ▼대도가 활짝 열어제친 부잣집 장롱에서 서민들은 평생 구경도 못할 귀금속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보도가 있자 사회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갔다. 이때는 5공정권 초기로 해방후 최대 사기사건이라는 장영자사건 직후였다. 부잣집만 골라 털고 사람을 해치지 않았다는 등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서민들 사이에서 대도 조세형을 의적시하고 피해자들을 도둑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재계 인명록을 뒤져 서울 성북동 일대 부잣집에서 수억원어치의 귀금속을 털어온 도둑이 최근 붙잡혔다. 형이 먼저 검거되고 도피중인 동생이 경찰에 전화를 걸어 『형님을 보살펴 달라』며 귀금속 수천만원어치를 숨겨둔 장소를 알려주었다. 남의 집 담이나 넘어다니는 주제에 형제간 우애가 두텁다. 휴대전화와 망원경을 이용한 기업형 절도방식이나 피해자 명단과 피해품 목록이 14년전 대도 사건을 닮았다. ▼그런데 이들에게 강절도를 당한 10여 집이 수사 협조는 물론 귀금속을 찾아갈 생각조차 하지 않아 경찰이 애를 먹고 있다. 이름이 알려져 망신을 당하느니 귀금속 몇점 찾지 않겠다고 작심한 것같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민나 도로보데스(모두가 도둑놈들)」라는 사회 분위기가 팽배했던 5공초와 지금은 다르다. 경찰도 수사과정에서 강절도 피해자들의 신원은 철저히 보호해야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