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국민회의 총재의 비자금 수사를 유보하겠다고 발표하기 위해 21일 오전11시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김태정(金泰政)검찰총장의 모습은 굳어 있었다. 그는 말없이 자리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1분쯤 후 김총장은 짧은 발표문을 다시한번 확인한 뒤 서너번이나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마침내 김총장은 자신의 결심을 밝혔다. 『이번 수사를 대선 이후로 유보한다…』 김총장은 전날 오후 2시간반 동안 열린 전국 고등검사장회의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회의가 끝난 뒤 김총장은 대검차장과 5명의 고등검사장을 자신의 집무실로 불러 30여분 동안 의견을 물었다. 이 자리에서 수사 유보를 주장한 「신중론」과 수사 강행을 주장한 「원칙론」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결론은 『최종 결정은 총장이 하고 검찰은 이 결정에 무조건 따른다』는 것이었다. 이후 약 1시간 동안 김총장은 구내식당에서 검찰수뇌부와 저녁식사를 함께 한 뒤 귀가하면서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공식수사가 시작된 마당에 더 이상 결정을 미루는 것은 혼란만 야기한다는 것. 20일 밤 10시경. 김총장은 김종구(金鍾求)법무부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대선 이후로 미루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 같다』고 보고했다. 이후 김총장은 21일 새벽까지 혼자 발표문 초안을 작성했다. 그리고 동이 틀 무렵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에게 이를 알리고 발표문을 완성하라고 지시했다. 김총장은 출근하자마자 대검 차장과 중수부장에게 자신의 결심을 밝히고 오전 10시경 수사기획관을 통해 『오전 11시에 긴급기자회견을 열겠다』고 기자실에 알려왔다. 〈조원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