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계가 21세기의 의미를 새기느라 야단이다. 외신을 보니 파리 시민들은 매일 에펠탑 전광탑을 올려보며 21세기를 카운트다운하고 있다. 1천년만에 맞이하는 해이기 때문일까. 현재의 시간이 과거로 흘러가는데 대한 아쉬움보다 다가오는 세기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더 큰 것 같다. 시간은 늘 변함이 없이 흐르는데도 거기에 색다른 의미를 부여하게 만드는 숫자의 마력이 새삼스럽다. 우리 나라도 2000년에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2002년에 월드컵으로 21세기를 화려하게 맞이하게 된다. 그 사이 2001년에 규모는 다소 작아도 의미에 있어서는 비할 데 없이 중요한 국제행사가 열린다. 제품디자인의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세계산업디자인단체총회(ICSID)를 서울에서 열게 된 것이다. 서울올림픽이 스포츠를 통해 우리 나라를 세계에 인식시킨 행사였다면 세계디자인총회는 우리 나라 산업디자인 수준을 세계에 자랑하고 우리가 디자인 선진국으로 진입함을 선언하는 행사가 되리라 본다. 드넓은 지구촌이 이미 1일생활권으로 변했다. 또한 우리는 문화가 곧 산업이자 경제로 직결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제품이 외국제품에 비해 손색없는 품질을 갖추고 가격까지 저렴해도 국내외 시장에서 외국제품에 밀린다면 그 원인은 의당 디자인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특히 섬유산업을 예로 들어보면 이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70년대 수출과 고도성장을 주도해온 섬유산업은 자체 개발에 소홀한 결과 국제경쟁력을 잃어 더 이상 디자인에 대한 투자를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제 디자인 연구개발이 없으면 우리는 문화와 경제적 측면에서 선진국의 속국으로 전락할 지도 모른다. 국내 산업디자인 붐을 조성해서 한국 상품의 질적 향상과 산업발전을 위한 재도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2001년 행사 개최 전까지 매년 국제규모의 디자인 관련 세미나와 전시회를 다양하고 꾸준하게 개최하는 한편 국내 기업들에게 외국 디자인에 대한 최신 정보를 제공하여 글로벌 디자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중소기업들도 독자적인 디자인 능력을 키우도록 힘써야 한다. 모처럼 맞이한 디자인 중흥의 기회를 살려 디자인 문화민족의 명성을 되찾으려면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가 무엇보다도 전제조건이 된다. 이를 위해 디자인 관련 학계와 업계 그리고 정부가 뜻을 모으고 서로 협력하기를 바란다. 정경연(텍스타일 디자인협회장/홍익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