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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쓰는 선비론]「화담철학」의 특징은…

입력 | 1997-10-28 08:16:00


열린 가능성의 철학, 평등의 철학. 이것이 화담 서경덕(徐敬德)의 성리철학이다. 조선후기 신분평등사상의 원류를 찾을 때 서화담이 거론되는 것도 바로 이같은 연유에서다. 서화담의 「평등사상」은 이지함(李之)과 허균(許筠)이 그의 자장(磁場)안에 있었다는 사실에서 쉽게 드러난다. 제자였던 이지함은 화담의 영향으로 수리 의학 천문 지리 음양 술서(述書) 복서(卜筮·길흉을 점치는 일) 등에 달통하게 됐으며 이로 인해 「토정비결」을 완성할 수 있었다. 허균 역시 서경덕 문하생이었던 자신의 아버지 허엽(許曄)의 사상적 분위기를 바탕으로 「홍길동전」을 짓고 평등사회를 갈구했던 것이다. 당시 학자이자 문장가요, 정치가 외교관이었던 허엽은 대의를 앞세우고 바른말 잘하기로 이름이 높아 퇴계(退溪)가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서경덕과 평등사상의 만남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모든 것은 그의 「일기론(一氣論)」에서 시작한다. 기(氣)안에 이(理)가 있음을 역설한 일기론이야말로 조선 기철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화담철학의 핵심이다. 이 일기론은 심오하기 그지 없다. 일(一)에는 이(二)가 절로 포괄돼 있으며 따라서 일(一)은 이(二)를 낳지 않을 수 없는(일생이·一生二) 것이다. 이(二)는 음양(陰陽), 동정(動靜)이고 일(一)은 음양과 동정의 시원(始源)이다. 생사(生死), 인귀(人鬼)는 하나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다. 그의 일기론은 이처럼 모든 대립을 초월하는 포괄이요, 현실로 돌아오면 모든 차별을 넘어서는 평등사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다. 30대 시절, 백성들의 고통을 호소했던 화담의 시 한편을 보자. 「바위 틈새로 흐르는 물 밤낮 없이 울어대는데/슬픈듯 원망스러운듯, 아니 싸움질하는듯/세상일 크든 작든 억울하지 않은 것 하나 없는데/푸른 하늘에 터뜨린 분노 아직도 가라앉질 않는구나」. 〈이광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