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의 행복만들기」 「큰 바람의 달」이 가고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 오고 있다. 내 책상 위에 걸려있는 인디언 달력에 의하면 10월과 11월은 각각 그렇게 불린다. 자연의 목소리에 가장 민감한 사람이 시인이라는 고전적인 의미가 유효하다면 인디언들은 일찍이 시인이었다. 그런데 인디언 부족마다 계절을 부르는 이름도 달랐다니 그들에게 약속된 「표준표기법」은 오로지 자연과 교통하는 순간의 통찰력과 직관일 뿐 사람의 머리에서 만들어낸 인공적인 약속의 표기법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그들을 매혹적으로 느끼는 그 무엇이 내 안에는 있는가 하고. 20대엔 「인디언멸망사」를 통해 제국주의의 침략사를 공부한 적이 있다. 그때 느꼈던 어둠이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모자라도 넉넉한 인디언의 행복 만들기」라는 친절한 제목의 책은 일본의 심리학자 가토 다이조가 쓴 처세에 관한 책이다. 왜 하필이면 인디언인가. 저자는 미국의 심리학자 조지 오튼 제임이 25년간 인디언과 생활하며 깨달은 바를 쓴 「인디언의 교훈」을 일본말로 번역하였다. 분명한 것은 이 책을 통해 인디언과 「직접」만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이 심리학자는 「인디언의 교훈」이란 책자를 통해 알게 된 인디언의 삶을 바람직한 삶의 규범으로 규정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83가지 충고를 하고 있다. 그 충고는 오로지 행복을 위한 것. 행복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그 목소리는 집안 어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깨를 두드리며 가르치듯 들려주는 그 목소리는 그래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크게 위로할 듯하다. 그러나 상처받은 자들의 짐승 같이 고독한 마음에는 세상 그 누구의 충고를 받아들일 공간이 없는 법. 그들은 백 마디 말보다, 백 가지 충고가 기록된 책자보다 텅 빈 백지를 원할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흘리는 눈물로 무늬를 드러낼 하얀 종이를. 그래서 이 책은 아마도 상처받은 자보다는 상처받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불행한 사람보다는 불행이 찾아올까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미리 보아야 할 책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정은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