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중순 영화축제가 한창인 항구도시에서 개봉을 하루 앞둔 영화감독을 만났다. 우린 비슷한 시기에 데뷔 준비를 했었고 피차 어렵고 복잡한 신인감독의 통과의례를 거쳐 몇달 사이로 데뷔했다. 우리는 몇 마디의 축하와 덕담을 주고받았고 그는 애써 의연한 표정이었지만 그의 얼굴에서 나는 흥행과 비평이라는 만만치 않은 시험을 앞에 둔 수험생의 긴장을 읽을 수 있었다. ▼ 작품성 흥행성사이 갈등 ▼ 한국에서 상업영화감독으로 데뷔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는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하고 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신뢰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캐스팅과 스태프 구성, 현장 지휘, 무수한 선택과 책임을 감당하며 제한된 여건 속에서 약속대로 한편의 완성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그가 세상에 던지고 싶은 「목소리」와 자본이 요구하는 흥행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해야 한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는 험난한 시험을 치러야 한다. 흥행에 실패하면 자본은 일회용 물품처럼 그를 버리며 작품에서 실패하면 평론은 그를 용서하지 않는다. 최소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는 두가지 모두 또는 둘중의 하나라도 어느 정도 성취해야 한다. 이 얼마나 어려운 직업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감독과 나는 기꺼이 영화 만들기의 고통과 즐거움을 선택했으며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길을 때로는 격려하고 때로는 비판하며 함께 걸어왔다. 그러나 그 길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에밀 쿠스트리차감독의 「언더그라운드」라는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오랜 세월 뒤에야 지상에 나온다. 그가 본 세상은 내전중이며 위기감과 혼란에 휩싸여 있다. 늦깎이로 데뷔해 들여다본 한국 영화계 역시 불안과 혼돈 속에 빠져 있는 듯했다. 자고 일어나면 하나씩 쓰러지는 기업처럼 한국 영화계 역시 흥행 실패로 문을 닫는 영화사가 속출하며 개점휴업인 영화사들도 많다. 더구나 영상산업에 발을 들여 놓은 대기업들이 투자를 망설이거나 점차 철수를 준비중이라는 불안한 소문도 들린다. 유난히도 영화제가 많았던 한 해를 돌아보며 영화시장이 그만큼 넓어졌고 다채로워졌다는 밝은 측면과 함께 과연 한국영화도 그만큼 성장을 했는가 하는 자괴감이 교차한다. 마지막 축제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한국영화 이대로는 안된다」라는 화두 아래 자성론과 위기론이 나오고 있다. 침체된 줄 알았던 일본 영화의 놀라운 부활, 중국과 이란 등 아시아영화들의 질적인 도약에 비추어 우리 영화는 상업성에만 치우쳐 있으며 작품성에서 뒤처져 있다는 것이다. 때늦은 감이 있으나 옳은 지적이다. ▼ 자성론에 거는 기대 ▼ 이제는 정말 축제로 들뜬 마음을 가뉨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