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모두 잠든 한 밤. 우물가에 주저앉아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시던 생선행상 어머니. 공장에서 손가락이 잘린 뒤로 말없이 마루끝에 앉아 먼 하늘만 쳐다보시던 아버지. 반장으로 당선되면 학급비품을 사야한다며 반장추천을 받고도 마다했던 공부 잘했던 오빠. 한 가족에 닥쳤던 지난날 삶의 고단함이 한편의 동화책으로 엮어져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황선미씨(34)의 「내 푸른 자전거」(두산동아)는 작가의 어린시절 추억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아기자기한 줄거리와 한병호씨의 따스한 그림, 동심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어울려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주인공 찬우는 전교 1등. 그러나 어머니는 과로로 병석에 드러눕고 아버지는 돈벌러 나간뒤 소식이 없다. 찬우는 어려운 가계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아버지가 하던 자전거 수리점에서 구멍난 타이어를 때우고 학교 수업도 빼먹으며 땅콩농장에서 품을 판다. 강한 자존심 때문에 찬우는 부잣집 친구에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 그러다 그토록 미워하던 친구가 어머니 머리맡에 몰래 영양제를 놓고 간 사실을 알게되면서 마음의 벽을 허문다. 이제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의 엄마가 된 작가 황씨. 동화에서처럼 어머니가 주신 용돈에서 생선 비린내를 없애기위해 돈을 세탁하고 다림질을 했었다. 초등학교 6학년때 학교에서 처음으로 동화책을 봤다. 그 감동으로 밤늦게까지 학교에 혼자 남아 몇달만에 수백권의 책을 읽었다. 다시 돌아본 그 어려움의 나날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 중학교를 가지못해 검정고시로 마쳤지만 부유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없다. 『가족간의 사랑과 이해가 없다면 물질적 풍요는 오히려 아이들의 성장에 전혀 도움이 안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날을 돌아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좌절과 상처를 통해서만 참다운 자기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황씨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지못한 게 가장 안타깝다고 한다. 요즘도 교육대학에 입학하는 꿈을 자주 꾼다. 『대학에 진학할 때는 교육대학이 있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제가 글을 잘 쓴다고 문예창작과를 선택하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그대로 했죠. 선생님이 됐다면 아이들에게 많은 얘기를 해줄 수 있었을 텐데…』 〈한정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