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김종심 칼럼]YS의 겨울

입력 | 1997-11-07 20:09:00


「YS와 그 주변」의 이인제(李仁濟)씨 지원설에 대한 대통령비서실장의 곤혹스런 해명이 곰곰이 음미할 만하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청와대 인사들의 행동에 대해 부추기는 활동도, 만류하는 활동도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다만 자신들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며 이는 국민의 기본권에 속하는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아마 사실일지 모른다. ▼ 與圈 불행의 씨앗 「청와대 주변 사람들」이 이인제씨 지원에 가담했든 안했든, 가담했다면 어떤 식으로 가담했든 그것이 모두 YS의 지시에 따른 행동이라고 말할 증거는 없다. YS는 대선의 공정관리와 엄정중립을 여러 차례 천명했고 지난달 김대중(金大中)씨와의 청와대 회동에서도 정계개편은 없다고 다짐했다. 표면상 그는 이 약속을 지켰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누구는 안된다, 누구라야 된다는 식의 「잡음」들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지만 YS가 터놓고 내심을 내보인 적은 없다. 다만 여러 정황을 통해 비교적 분명히 읽을 수 있는 것은 YS의 이회창(李會昌)씨에 대한 「감정」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이 점에 대해서만은 말을 돌리려 하지 않았다. 「아마추어 정치가」 이회창씨의 정치력 부재를 비판하고 그의 YS와의 차별화공략을 동의를 구하듯 비난했다. 단순한 섭섭함이나 야속함을 넘어 불신 또는 배신감으로 정리할 수 있는 감정이다. 이인제씨의 탈당과 신한국당 민주계의 반란이 YS의 묵인이나 종용에 의한 행동이라고 믿는 이회창씨 측도 배신감을 내보이기는 마찬가지다. 그 불신의 끝이 YS를 향한 탈당 통첩과 국민회의와 합세한 이인제씨 지원의혹 폭로였다는 것은 모두 아는 일이다. YS의 필요에 따라 만나고 이회창씨의 자존심에 걸려 헤어지기를 반복해온 두 사람의 「존경심 없는 관계」가 도달한 파국이다. 경선불복의 거센 비난을 무릅쓰고 대권이라는 「사과」를 손에 쥐려 한 이인제씨의 씻을 수 없는 원죄도 그 비극적 상황의 사생아라는 느낌도 든다. 결국 YS는 탈당을 선택했다. 그로서는 떼밀려서 뽑은 내키지 않은 제비일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무리한 정권재창출 욕심을 버리고 대선 공정관리라는 마지막 남은 제비를 선택한 것이 복일 수 있다는 전망도 가능하다. 그가 처음부터 당당하게 그 길을 택했더라면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해도 너무 한다」는 그 많은 「수모」를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생각마저 든다. 돌아보면 이 모든 불행의 씨앗은 YS 자신이 뿌렸다. 김대중씨에 대한 불타는 불신감이 그를 정권재창출 집념으로 내몰았고 김종필(金鍾泌)씨와 박태준(朴泰俊)씨에 대한 야멸찬 「배신」이 그를 「3노(三老)」가 죄는 포위망에 빠뜨렸다. 여기에 이회창씨의 분노가 합세해 그의 자리는 더욱 옹색해졌다. 유일한 출구일 수 있는 가출한 「정치적 아들」 이인제씨마저 행여 그가 곁에 다가올세라 황급히 손부터 내젓는 허망한 형국이다. ▼ 대선 공정관리에 심혈을 YS의 탈당이 이인제씨를 본격적으로 돕기 위한 술수일 수 있다는 경계는 이제 노파심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런 열정과 의지를 뒷받침하기에는 그의 힘은 너무 쇠약해 보인다. 「5년동안 나라 망친 대통령」이라는 현직 대통령에게 차마 퍼부을 수 없는 비난을 감수하기에도 힘겨운 그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구원은 공정한 대선관리 뿐이었던 셈이다. 그는 돌고 돌아 그 길을 택했다. 승부사 YS에게 그 선택은 굴욕적일 수도 있다. 입동(立冬)이 지났다. 올 겨울은 어쩌면 그의 생애에서 가장 우울한 겨울이 될 것 같다. 권위의 희미한 그림자마저 사라진 대통령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국민도 쓸쓸하기는 마찬가지다. 김종심(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