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장 페이로와 독일의 게오르그 에케로 등 두 나라 학자 60여명은 86년 미래의 역사교육을 위한 국제회의를 조직한 이래 장장 7년여에 걸쳐 독불(獨佛)역사교과서 비판 공동작업을 벌여왔다. 그들은 이 공동작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상대 나라의 비판을 수용하는 한편 민족적인 편견을떠나 자기네역사의오점과 상대측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사실대로 가르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미래의 새 유럽 건설을 위한 또하나의 길이 열리게 됐다며 양국 모두 축배를 들었다고 한다. 이같은 작업은 우리 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지난해 한일(韓日) 외무장관회담에서는 양국의 역사 공동연구 문제가 합의됐으나 일본 정부의 관여폭을 둘러싸고 지지부진했다. 그러더니 7월에는 일본 문부성과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 일본위원회(사무총장 아메미야 다다시 문부성 학술국제국장)가 한일간 역사교과서를 공동으로 연구하자는 우리측 위원회의 제안마저 끝내 거부하고 말았다. 일본측은 『역사교과서 문제는 민간연구에 맡겨야 할 과제』라고 애써 떠넘기면서 사실상 자기네들로서는 답답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식으로 거드름만 피웠다. 아니나 다를까 「한일 역사연구 추진 공동위원회」일본측 대표인 야마모토 다다시 일본 국제 교류센터 이사장은 이 위원회가 민간기구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다만 한일 관계사를 연구하는 단체 등에 재정지원만을 하겠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한마디로 일본측의 태도는 「말 잘듣는 예쁜 놈」만 골라서 「뒷돈」을 대주겠다는 뜻으로 요약된다. 이제 우리는 아집과 독선을 일삼는 일본인들의 인식변화를 마냥 기대할 수는 없다. 저 멀리 프랑스 독일간의 왜곡역사 시정합의를 이끌어낸 국제회의 업적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현재 유네스코가 역점사업으로 추진중인 국제적인 교과서문제 개선노력에 적극 동참함과 동시에 일본의 역사적 과오를 조사 분석 정리하고 교육하기 위해 세계적인 관심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더 일깨워나가야 할 것이다. 이 문제를 포함, 양측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의 당당한 태도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우리땅 독도에 접안시설을 만들어놓고도 일본의 눈치를 살피며 준공식을 울릉도에서 치르는 자세로는 왜곡된 역사가 바로 잡힐 수 없다. 일본이 우리를 우습게 보는 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정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