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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자노트]고미석/손해보는 처세술

입력 | 1997-11-13 19:38:00


아파트 앞길에서 미술학원에 다녀오던 일곱살 꼬마가 오토바이에 치였다. 동네 중국음식점에서 일하는 열다섯살 가출 청소년이 배달중 사고를 낸 것이다. 꼬마는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고 으레 그렇듯 합의 문제가 대두됐다. 소년의 엄마나 음식점 주인은 지레 겁부터 먹고 사정이 어렵다고 울상을 지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금쪽 같은 내 아이를 다치게 한 소행이 밉고 괘씸해서라도 내심 「어디 한번 고생 좀 해봐라」하는 생각이 들텐데 꼬마의 부모는 달랐다. 평범한 맞벌이 부부인 그들은 『그래도 우리가 그 사람들 사는 형편보다 나은데 우리가 손해보자』고 했다. 사과의 표시로 받은얼마 안되는 돈을 당장 입원비와 견주어봐도 한참 밑지는 셈법이었다. 교통사고는 후유증이 심각하니까 나중까지 생각해 제대로 보상받아야 한다며 오히려 남들이 성화였다. 그 돈 받아 부자될 것도 아니고, 우리집 애를 생각해서라도 그 사람들 봉으로 만들어 무슨 덕을 보겠느냐는 게 그들의 대꾸. 아예 남편은 한술 더 떠 꼬마가 퇴원하면 어려운 중국음식점의 매상이나 올려주자는 얘기를 꺼내 주변사람들이 허허 웃고 말았다. 단돈 일원이라도 내가 손해를 보면 마치 「존재의 이유」마저 부인당한 듯 눈에 불을 켜는 세상. 꼼꼼히 살펴보면 우리 곁엔 이런 사람들이 있다. 겨울을 앞두고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했는데 전주인이 기름탱크를 꽉꽉 채워놓고 갔더라는 후배의 얘기를 들을 때, 짐싸기도 벅찬데 새로 이사올 사람 생각해 싱크대 기름때와 창틀의 묵은 먼지까지 닦아놓고 가는 어른을 봤을 때도 그랬다. 『아, 그렇게도 할 수 있는 거구나』 새삼스레 세상살이를 배우는 기분이었다. 먹고 사는 것 자체가 버거웠던 시절에도 어른들은 「세상은 손해보듯 사는 것」이라고 일렀다. 아무리 상황이 힘들다고 불평해도 예전보다 살림살이는 펴진 셈인데 더 각박하고 살벌해진 사회. 그래도 들여다보면 세상에 감사할 이유는 너무나 많다. 나는 나 혼자 힘으로 사는 게 아니다. 익명의 많은 이들에게 의존하며 산다. 작은 고마움을 나누는 마음에서라도 날마다 조금씩 손해보듯 사는 걸 연습할 수는 없을까. 별별 처세학이 나돌지만 내가 좀 아쉬워도 남에게 인색하게 대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바람직한 처세일 것 같다. 고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