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말 나이지리아로 떠나올 때 문학수첩사의 김종철 시인이 내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말이 새삼 떠오른다. 『거긴 아침에 눈을 뜨면 새카만 애들만 보일 거야』 해외생활을 시작한지 18년이나 지나 되돌아보면 정년 퇴직한 외교관에게 남는 것이라고는 헌 양복, 헌 구두 그리고 헌 마누라뿐이라는 약간 자조적인 농담은 접어두고, 『아, 나이지리아! 내가 참 멀리까지도 왔구나』하는 감회가 서린다. 김시인의 말 그대로 새카만 애들만, 아니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새카맣게(한심하게) 보인다. 말라리아에도 지금까지 열번 이상이나 걸렸다. ▼ 한국의 무관심과 무지 ▼ 아프리카는 우리에게 참으로 먼 지역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아프리카의 관계발전을 가로막는 것은 지리적인 거리보다도 무관심과 무지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아프리카에 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유럽세력이 대포(군대)와 십자가(종교)를 통해서 이미 4백년 전부터 아프리카와 관계를 맺고 단단한 발판을 구축하여 지금도 여러가지 경제적인 이익을 거두고 있는데 우리가 아프리카를 안 것은 불과 30년 전이 아닌가. 아프리카를 모르면 모르는대로 그냥 21세기로 넘어가도 과연 우리 국익에 별다른 손해는 없을까. 53개국이 자리잡은 아프리카의 인구는 7억5천만명. 그 중에서도 나이지리아는 인구가 1억2천만명에 면적은 남한의 9배나 된다. 서부 아프리카, 특히 나이지리아에 인구가 집중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에 사람 살기에 적절한 기후, 비옥한 토지, 풍부한 자원이 구비되어 있다는 의미다. 나이지리아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국가 중 일곱번째 산유국이고 하루에 2백만배럴씩 채굴해도 30년 이상이 걸리는 석유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경제규모로 보아서 서부 아프리카의 최대 시장이기도 하다. 나이지리아의 경제가 일어나야 서부 아프리카 여러나라가 잘 살 수 있다는 말이 빈말만은 아니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값싼 노동력이 풍부하다. 아프리카인으로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월레 소잉카(망명 중)도 나이지리아인이다. 그러나 나이지리아인은 자기 나라를 「잠자는 사자」라고 한다. 잠재력은 세계 굴지에 속하나 현실은 바닥중 바닥이다. 9백만명이 사는 라고스 시내의 중심가만 보면 뉴욕이나 강남의 신사동에 들어선 기분이 들지만 주변에는 절대빈곤에 허덕이는 서민들이 너무 많아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싶을 지경이다. 무장강도 때문에 밤길이 위험하다. 말라리아뿐 아니라 에이즈도 심각한 위험요소다. 전기도 하루에 열번은 나간다. 대사관의 자가발전기도 15년 이상된 것이라 자주 고장이 나서 골칫거리다. ▼ 체계적 대비 서둘러야 ▼ 이런 악조건에서도 대우건설이 일찍이 10여년 전부터 이곳에 진출하여 7억달러 이상의 수주실적을 올렸다. 지금도 동남부 유전지대에서 80여명의 대우 직원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라고스 일대에는 대우 현대 기아 등 우리나라 자동차가 흔하게 굴러다닌다. 비전이 있는 정치지도자가 「시급한 민생고를 해결하고 국가를 재건하자」는 구호를 외치면서 성실하게 국가를 운영한다면 아프리카는 절망의 대륙에서 벗어날 것이다. 우리가 승진과 보직의 불이익 등을 이유로 아프리카 근무를 기피한다면 아프리카에 대한 무지가 늘어날 뿐이다. 이곳 요루바족 속담에 「야자나무 기둥은 아무리 커도 목재가 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바탕이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는 의미다. 우리도 아프리카에 대한 인재양성 조직관리 경험과 지식의 축적 및 지속적인 연구 등 체계적인 대비가 없다면 언젠가 큰 이익을 놓치고 말 것이다. 이동진 (주 나이지리아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