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김수영문학상은 16년만에 첫 여성수상자를 탄생시켰다. 「불쌍한 사랑기계」(문학과 지성사)를 펴낸 김혜순씨(42·서울예전 교수). 지금껏 내로라하는 몇몇 여성시인이 이 상을 두고 아깝게 고배를 마셨다. 김씨도 94년에 이어 두번째 후보로 오른 끝에 비로소 상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쑥스럽습니다. 그러나 저의 이번 수상이 여성 시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덕담 일변이기 쉬운 심사평. 그러나 올해 심사위원 신경림 정현종 최승호씨의 평은 자못 갈등에 싸여있다. 『그의 시는 온갖 상상력을 자극한다』 『묘한 매력과 고통스런 충격으로 다가온다』고 찬탄하는 한편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며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않는다. 시는 「해석으로서만이 아니라 느낌으로도 읽을 수 있다」는 전통적인 시(詩)읽기의 맥락에서 보자면 그는 이단같은 존재다. 김씨는 『우리나라에는 정서적인 배설을 보여주는 시가 너무 많다. 나는 감정과 관계없는 시를 쓰려고 노력한다』고 공언해왔다. 『시인이란 우주를 읽는 나만의 방법을 가진 자』라며 자기만의 형식이 없고 목소리만 큰 시들을 한사코 거부해왔다. 그의 작품에서는 곧잘 낯익은 사물들이 생경한 모습으로 해체돼 드러난다. 그 기괴한 그림을 불편한 마음으로 읽어내려가다 보면 문득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이렇게 파편화돼 있는 것인가』라는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일상의 허튼말들을 시어(詩語)로 수용해 그 지리멸렬함을 역설적으로 뛰어넘으려했던 선배시인 김수영처럼 김씨도 일그러진 현실에 결코 덧칠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당신의 시는 무엇을 말하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당대현실을 떠나본 적이 없다』고 당당히 답한다. 「어려운」 김씨의 시. 그러나 꿈틀거리는 육체적 상상력을 직설적인 시어들로 해방시킨 이런 시를 읽다보면 그 난해함은 홀연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물동이 인 여자들의 가랑이 아래 눕고 싶다/저 아래 우물에서 동이 가득 물을 이고/언덕을 오르는 여자들의 가랑이 아래 눕고 싶다//땅속에서 싱싱한 영양을 퍼올려/굵은 가지들 작은 줄기들 속으로 젖물을 퍼붓는/여자들 가득 품고 서 있는 저 나무/아래 누워 그 여자들 가랑이 만지고 싶다/짓이겨진 초록 비린내 후욱 풍긴다…」(「환한 걸레」중) 〈정은령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