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그룹들이 경쟁적으로 자금 확보에 나서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금융시장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모 재벌그룹이 이번주 들어 금리와 금액을 불문하고 대대적으로 자금 끌어모으기를 시작하자 다른 그룹까지 가세해 자금 가수요가 극심해졌다. 상위 재벌들이 시중자금을 싹쓸이하면 결과는 뻔하다. 금융불안 해소는 요원해지고 중소기업 자금난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대기업들이 이처럼 경쟁적으로 자금 확보에 나선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요청으로 긴축정책이 펼쳐지면 자금경색이 심해지고 금리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부실 금융기관 정리로 대출여력이 줄고 증시와 채권시장이 침체해 직접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는 데다 해외차입도 당분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인 것은 사실이다. 기업들이 미리 돈을 마련해 두려는 입장은 알겠으나 가수요까지 유발해 금융혼란을 부채질해선 안된다. 금융시장이 벼랑끝에 몰린 판에 급하지도 않은 자금까지 마련하려고 법석을 떠는 재벌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국가경제야 어떻게 되든 나만 살겠다는 이기주의다. 경제위기는 재벌의 방만한 경영에도 많은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위기극복을 위해 고통을 분담하기보다 눈앞의 이익만 챙기는 태도는 무책임하다. 상위 재벌이라면 국가경제도 생각해야 한다. 당장 자금을 얼마만큼 확보한다 해도 금융혼란이 오래 가면 결코 기업에 이롭지 않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재벌들은 자금 싹쓸이 경쟁을 중단하고 긴축기조에 맞춘 경영쇄신에 주력하기 바란다. 불요불급한 투자를 과감하게 줄이고 불필요한 부동산과 유가증권을 처분해 부족자금을 충당하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금융기관들도 신용이 좋은 상위 재벌에만 편중해 자금을 공급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