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란 무엇인가. 당대의 모순에 정면으로 맞서 새로운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또 그 시대의 종언과 더불어 완멸(完滅)함에 기꺼이 동의하는 그런 인물이 아닐까. 이 때문에 우리는 영웅들의 이면에 그토록 고독한 「인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간혹 발견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정도전을 위한 변명」(조유식 지음·푸른역사)은 56세라는 비교적 짧은 생을 파란만장하게 살다 간 정도전이라는 한 인간의 야망과 고뇌를 펼쳐보인다. 우선 정도전이 한평생 개혁과 혁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시대와의 불화」가 거론된다. 그의 「비천한」 혈통은 눈여겨 볼 만한 대목. 정도전은 하륜 조영규 등 다른 개국공신들이 그러했듯 서얼출신이란 이유로 귀족들로부터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신분적 한계에 대한 불만이 체제에 대한 불만과 결합, 역성혁명을 촉발한 에너지로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여기에 가난한 백성의 고혈을 쥐어 짜는 불합리한 경제구조, 뇌물과 청탁으로 관직이 거래되는 부패한 정치가 그의 현실인식을 더욱 치열하게 이끌어갔다. 여느 사대부와 다른, 타고난 실천가적 기질은 그의 생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그는 안방에 틀어박혀 백성의 삶과 동떨어진 공리공담만 일삼는 선비들을 경멸했다. 그리고 그는 문인이면서도 호방한 무골(武骨)의 기상을 타고났다. 일례로 그는 「첫눈이 내리는 겨울날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동료의 물음에 「가죽옷에 준마 타고 누런 개와 푸른 매를 데리고 평원에서 사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말, 수구세력에 대한 비타협으로 일관한 그는 30대초부터 무려 10년 동안 유배와 초막생활 등 정치낭인 생활을 전전한다. 무명과 박대를 견딘 절치부심(切齒腐心)의 세월끝에 그는 41세에 이르러 마침내 변방의 무장 이성계를 찾아갔다. 그 스스로가 이성계를 유방, 자신을 희대의 책사(策士) 장량으로 비유한 이 만남에서 역성혁명을 결의하고 9년후 조선을 건국하고 최고권력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민본주의」라는 유교적 이상국가에 대한 그의 열정은 이방원과의 화해할 수 없는 충돌로 치닫고 요동회복을 위한 군비강화는 명나라 주원장의 심한 견제를 초래했다. 그리고 이방원의 「왕자의 난」과 그의 비극적 종말…. 「정도전과 이방원은 화해할 수 없었을까」 「그가 조금만 더 오래 살았다면 우리 역사는 대륙을 무대로 새롭게 전개될 수 있었을까」. 저자의 이같은 물음은 영웅없는 시대의 부질없는 「타령」인가. 〈한정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