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밤이었다. 거대한 정치적 이벤트가 한국의 밤을 긴장시켰다. 최고의 정치적 스타들이 벌이는 고난도의 언어게임은 유권자들의 시선을 붙잡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역시 토론회는 합동토론회라야 한다는 것을 모두가 확인할 수 있었다. 주제(Thema)의 선택과 의제(Agenda)의 선정, 시간의 엄격한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을 이번 토론회는 충분히 입증하였다. 선거법에 의한 제1차 TV토론의 주제는 경제문제에 한정되었고 물가와 고용문제 등 피부로 느끼는 문제들이 의제로 선정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합동토론회를 보면서 왜 7월 이후 지금까지 1인기자회견형의 토론 아닌 토론으로 전파낭비를 해왔는지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본격 선거운동 기간이라도 합동토론회가 원만하게 이루어진 것은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일련의 TV토론회들이 우리 정치의 품질개선에 그리고 언어문화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다. 대통령 후보들간의 TV토론은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1960년 9월 26일 밤 9시30분(미국의 동부표준시간) 시카고의 한 스튜디오에서 열렸던 케네디와 닉슨의 토론은 선거의 승패를 갈라 놓았다. 당시 닉슨은 우수한 토론능력과 TV정치인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었고 케네디는 「멋있는 젊은 사람」 정도의 개인적인 이미지만을 갖고 있었다. 1차 토론의 영향은 매우 극적이었다. TV정치의 연구가인 글래디스 랭과 커트 랭의 연구에 의하면 1차 토론을 시청하거나 청취했던 사람들중 89%의 사람들이 케네디가 닉슨을 능가했거나 최소한 대등하게 싸웠다고 생각했다. 케네디의 기대하지 않았던 세련된 토론과 닉슨의 기대에 못미친 토론은 케네디의 드라마틱한 승리를 가져왔다. 선거는 경쟁이고 대선 TV토론은 선택당하기 위한 싸움이다. 따라서 TV토론에는 후보자와 사회자만이 아니라 모든 유권자들이 참여자가 되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우리 시청자들은 누구에게 「케네디 효과」가 나타나는가를 염두에 두면서 TV토론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경우는 TV토론이 끝나자마자 바로 여론조사가 실시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유감이다. 굳이 관전평을 이야기하자면 이회창 후보는 공세와 수비의 균형을 위해 노력하였고 김대중후보는 준비된 경륜과 여유를 보여주는데 치중하였다. 그리고 이인제 후보는 젊고 패기있는 후보라는 측면을 강조했다. 이번 토론회의 장점은 그동안 1인기자회견형 토론회에서 제기되었던 공정성의 문제와 패널리스트들의 대표성과 중립성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거를 위한 TV토론회의 목적 그대로 후보간의 비교가 가능한 토론회였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의제가 적절하긴 했지만 의제선정에 보다 많은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설명되지 않은 채 토론회가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정치의 이합집산 현상 때문에 생각과 정책의 공방이 아니라 감정의 공방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책의 차별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선거토론인 만큼 정치적 책임공방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정책공방과 정책적 정보의 제공이다. 왜냐하면 국민이 함께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광식 (21세기 한국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