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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곳에선]라원찬/다시 일어선 멕시코 경제

입력 | 1997-12-09 08:04:00


내가 부임할 때인 96년 초 멕시코는 94년 말의 외환 금융위기로 인한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멕시코가 단시일내에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악화되어가는 경제사정을 멕시코 경제에 비유하는 것을 하나의 수치로 생각하는 경향마저 있을 정도였다. 페소화 평가절하 후 사상 최악의 불황이 닥쳐 95년 한해 1백만명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민간 소비와 투자가 얼어붙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6.9%로급강하했다.소비자물가상승률이 20%로 동결되면서 대다수 멕시코인들의 실질소득도 대폭 감소했다. 그러나 최근 경제성장률이 연율로 8.1%에 달해 오일경기 이래 최고를 기록하고 물가도 10%대로 잡혀 근로자들의 실질소득이 증가세로 돌아서고 있다. ▼ 세디요 대통령의 리더십 아시아지역 외환위기의 여파로 브라질 및 아르헨티나 등 남미 경제대국들의 사정이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경제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자 멕시코인들의 자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에르네스토 세디요 대통령은 지난달 캐나다 밴쿠버에 모인 아시아의 지도자들에게 최근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처방과 충고를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 멕시코는 어떻게 경제위기를 그토록 빨리 극복할 수 있었는가. 경제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는 세디요 대통령의 성실성과 탁월한 지도력 그리고 국민 모두의 고통분담을 든다. 세디요 대통령은 본래 정치가 출신이 아닌 테크노크라트였는데 집권당 대통령 후보가 암살되는 바람에 대통령 후보가 되고 당선까지 되었다. 따라서 집권당 내에서 정치적 기반이 약했고 취임 후 한달 만에 터진 금융위기로 국민적 지지도 극히 미미했었다. 94년말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이 살리나스 전 정부가 임기 말년에 실정을 감추기 위해 대응책을 미룬 탓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그 책임을 세디요 대통령이 지게 되었던 것이다. 세디요 대통령은 그동안의 잘못된 정책방향을 솔직히 인정하고 솔선하여 방만한 재정지출을 최대한 긴축재정으로 전환하고 국영기업의 과감한 민영화 및 지속적인 규제완화에 나섰으며 외환위기를 오히려 그동안 낙후되었던 금융산업 개혁의 기회로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하였다. 한편 국민에게는 60년전 세계공황 이후 최악의 국난 극복을 위해 고통을 분담하자고 간절히 호소해 나갔다. 노동 및 경제계는 나라 경제의 어려움을 인식하고 정부의 호소에 호응하여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국민단합에 적극 참여하였다. 근로자들은 물가상승에 못미치는 임금인상을 감내하였고 기업인들도 수출 증대에 모든 노력을 쏟아부어 1백85억달러에 이르던 무역적자를 일거에 71억달러의 흑자로 전환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멕시코를 외면했던 외국인 투자가들도 멕시코정부의 일관된 정책방향을 신뢰하여 되돌아옴에 따라 페소화사태로 발생했던 1백만명의 실업자들이 어느새 모두 일자리를 찾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멕시코에 못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다』는 말이 있듯이 이번의 위기를 우리 국민 모두가 인내를 갖고 슬기롭게 대처해 나간다면 그동안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취약점을 안고 있었던 한국경제의 뿌리를 보다 견고히하고 21세기 태평양의 선도국가로 나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얼마 앞둔 지금 멕시코에서는 백화점과 상가들이 연말 대목을 앞두고 손님맞이 준비에 여념이 없다. 언론에서는 올 연말은 경제호황에 힙입어 사상 최고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면에 유난히 썰렁한 연말을 맞이할 우리나라를 생각하니 우울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라원찬(주 멕시코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