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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어제오늘/청와대터]풍수지리상 최고의 명당

입력 | 1997-12-11 08:44:00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가 있는 청와대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전형적 입지로 예로부터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로 불렸다. 주산(主山)인 북악산과 안산(案山)인 남산이 있으며 좌청룡(左靑龍) 낙산, 우백호(右白虎) 인왕산이 청와대를 호위하고 있다. 또 명당수(明堂水)인 청계천이 북북서에서 동으로, 객수(客水)인 한강이 동에서 서로 흐르고 있다. 청와대 역사는 8백93년 전인 고려 숙종 9년(1104년) 완성된 남경(南京) 이궁(離宮)에서부터 시작된다. 조선조 들어 태조 4년(1395년) 정궁(正宮)인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후원(後園)으로 사용됐으며 고종 5년(1868년) 경복궁 중건 이후 건물들이 들어섰다. 청와대터가 시련에 부닥친 것은 1910년 한일합방 이후. 그해 경복궁이 조선총독부 청사부지로 정해지면서 오운각(五雲閣) 등 각종 누각이 하나둘씩 철거됐으며 39년에는 지금의 구본관(舊本館) 자리에 조선총독 관저가 들어섰다. 당시 조선인 지관(地官)들이 북악의 용맥(龍脈)에서 약간 비켜난 곳에 관저부지를 잡아 일제총독들이 망하도록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45년 해방이후 2년3개월간 미군정사령관인 하지중장의 관사로 사용되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48년 이승만(李承晩) 초대대통령이 구본관을 「경무대」로 명명,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했다. 이후 윤보선(尹潽善)대통령이 청와대로 개칭했다. 현 청와대 관저와 본관은 90년 10월과 91년 9월에 각각 신축, 완공돼 「일제총독관저의 어두운 역사」를 털어냈다. 구 본관앞 중앙화단에는 7백16년수령의 커다란 주목이 청와대의 영욕을 지켜보고 있다. 〈성동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