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서구를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있다. 미국의 신용평가기관이 세계 11대 경제대국인 한국의 채권을 정크본드(액면가보다 싼 채권) 수준으로 평가하자 한국의 경제가 녹아내리고 있으며 그 여파가 미국과 유럽에까지 뻗치고 있다. 상황이 더욱 악화될 소지가 다분히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에 요구하고 있는 조건들은 현실적으로 76년 영국에 요구했던 조건들보다 훨씬 심하고 또한 훈장(訓長) 같은 접근방식이다. 마치 전쟁에서 패배한 적국에 대해 조약을 통해 강요하고 있는 처벌적인 성격마저 띠고 있다. 한국인들은 공모론을 추측할 필요까지는 없다. 미국은 공개적으로 이번 기회를 이용해 한국에 족쇄를 채우고 서구의 교역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이같은 위기가 만약 한국이 정권말기에 처해 있을 때 발생하지만 않았다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구는 노동자의 권리와 노조의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 국제노동기구(ILO)와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아시아 무역상대국들에 압력을 가하는 형식으로 새로운 교역캠페인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노력이 성공한다면 그 결실은 우선 서울에서 나타날 것이다. 강력한 노조는 한국 경제가 경쟁력을 잃게 만들었으며 또한 경제개혁을 가로막아 왔다. 노조는 IMF가 요구하고 있는 약 1백만에 달하는 직장의 손실과 종신고용의 종말, 실질 및 명목임금의 감소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할 것이다. 만약 IMF의 세계전략이 통용된다면 개도국에 노조의 힘을 강화시키려는 서구의 노력은 마치 독일이 80년전 레닌을 기차에 태워 러시아에 보내는 것과 같은 양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겪고 있는 경제위기의 유행병이 서구시장을 보다 심각하게 강타한다면 유럽과 미국은 IMF를 통해 앙갚음하는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정리·런던〓이진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