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난국은 성수대교의 붕괴처럼 하루 아침에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벌써부터 예고된 현상이었다. 위기관리에 미숙하고 솔직하지 못한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로 인해 지금 온 나라가 국제적인 수모와 수난을 겪고 있다. 이렇듯 엄청난 국가적인 파탄을 가져왔는데도 실질적으로 책임질 당사자나 주체가 없다니 그저 한심스러울 따름이다. 유한한 인간존재로 한정된 지구자원 아래서 무한한 경제성장을 추구하려는 생각부터가 그릇된 망상이다.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인과관계의 고리로 이어져 있다. 요 몇해를 두고 우리 사회의 갖가지 행태를 유심히 지켜본 사람이라면 오늘과 같은 결과를 능히 짐작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국민소득 1만달러의 문턱에서 그 씀씀이는 나라 안팎 가릴 것 없이 2만, 3만달러를 넘었으니 이러고도 그 살림살이가 온전할 수 있었겠는가. 사람의 목숨을 이어주는 음식물을 아낄 줄 모르고 함부로 마구 버리면서 우리가 어떻게 복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이 나라에서 하루에 발생하는 생활쓰레기 중 3분의 1이 음식물쓰레기로 버려진다.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연간 약 8조원, 우리나라 1년 예산의 15%라고 한다. 한쪽에서는 굶어 죽는 이웃이 수두룩한데 목숨과 같은 음식물을 마구잡이로 버렸으니 이 어찌 복을감할 일이 아닌가. ▼ 헤픈 씀씀이의 결과 ▼ 음식뿐만 아니라 멀쩡한 의류나 가재도구도 새 유행을 따라 함부로 버리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가. 우리 분수에 넘친 소비행태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미국식 산업구조에서 비롯된 소비주의적 생활방식에 잘못 길들여진 폐습이다. 그 결과 삶의 기쁨이나 충만을 가져오기보다는 환경을 파괴하고 오염시키면서 사람이 설 자리가 사라져 가게 되었다. 소비주의적 생활습관은 작은 것과 적은 것에 고마워할 줄도 모르고 만족할 줄도 모르게 한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물질적 생산과 소비의 증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인간과 자연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국민총생산과 같은 단순한 수량적 척도로 사회발전을 따지는 산업문화 속에서 인간은 하나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끝없는 경제성장과 물질적 번영은 정신적인 빈곤과 심리적 불안정 그리고 생명력의 상실을 가져온다. 국민소득 7천달러 시대로 후퇴했다고 다들 걱정하고 있지만 생각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이제 제 자리로 돌아온 것 같다. 허세와 과시와 거품을 걷어내어 그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한 제자가 스승에게 묻는다. 『오늘과 같은 어지러운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합니까?』 스승은 이렇게 대답한다. 『어지러운 세상이야말로 살맛나는 좋은 세상 아니냐?』 ▼ 적은 것으로도 만족을 ▼ 오늘과 같은 고통과 위기 앞에서 우리는 우리 내부에 잠재된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새롭게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상황에 새롭게 대처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6.25의 잿더미 속에서 맨주먹으로 일어선 불굴의 의지가 있다. 위기를 기회로 잡으라는 말도 이런 어려운 때 느슨하고 피폐된 민족의 기상을다시 일깨우라는 교훈이다. 이제 우리는 새삼스럽게 가난의 덕을 익힐 때가 왔다. 주어진 가난은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만 스스로 자제하고 억제하면서 선택한 맑은 가난, 즉 청빈은 삶의 미덕이다. 청빈이란 단순한 가난이 아니라 자연과 생명을 같이하고 이 세상의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루면서 함께 살아감을 뜻한다. 자신의 생각과 의지로 선택한 간소한 삶의 형태가 곧 청빈이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타락하기 쉽지만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고 건전한 정신을 지니게 한다. 오늘 우리 앞에 닥친 시련은 물질적인 풍요에만 눈이 멀었던 우리에게 자신의 분수를 헤아리게 하고 맑은 가난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그런 계기이기도 하다. 일찍이 이 땅에 살다가 가신 우리 선인들이 피땀 흘려 쌓은 음덕으로 오늘의 우리가 있듯이 이 다음 세대를 위해 지금의 우리도 음덕을 쌓아나가야 한다. 저마다 투철한 삶의 질서를 가지고 근검 절약해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생활습관을 익혀야 한다. 당신과 나, 한 사람 한 사람이 달라지지 않고서는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반드시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신념이 곧 우리를 받쳐줄 것이다. 대선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에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 투표에 임해야 한다. 정부를 잘못 선택한 그 과오는 두번 다시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