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주요 대학들이 논술문제를 고전 중심으로 출제하겠다고 발표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가벼운 시사문제 중심으로 대비해온 수험생과 교사들은 당황하고 있다고 한다. 고전의 개념과 범위, 논술과 고전읽기의 상관관계에 대한 당혹감일 것이다. 고전이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진가가 검증되어 왔으며 새로운 작품에 의해 대체가 쉽지 않은 오랜 가치를 담은 책을 말한다. 하지만 고전이 반드시 오래된 책일 필요는 없다. 현대에 나온 책 중에도 고전의 반열에 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럼 논술과 고전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논술고사는 기존의 암기식 교육 대신 폭넓은 독서와 깊은 사색에 바탕을 둔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능력을 키우려는 취지에서 출발한다. 그러기에 학생들의 글재주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이성적 판단능력과 풍부한 상상력, 독자적인 세계관 등 종합적인 지적능력을 본다. 이러한 지적능력은 신문이나 잡지보다 인류의 지성사에 빛난 위대한 문학가나 사상가의 지적 성취를 맛봄으로써 증진된다. 인간정신이 지금처럼 오염되지 않았을 때 그 영역은 보다 광활했고 독창적인 사상이 도처에서 개화할 수 있었다.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고전이 어둠의 질곡을 헤쳐나온 중세인들에게 한줄기 희망이 된 것을 역사는 잘 입증한다. 고전은 또 우리의 상상력을 키워준다. 우리는 신과 인간의 경계가 희박했던 신화 속에서 창의적 상상력이 확대되고 오이디푸스왕의 비극에서는 연민과 공포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상상력이 고갈될 때마다 괴테는 2천년의 방대한 시간차를 뛰어넘어 호메로스를 호흡하며 상상력의 한계를 극복해 갔다. 이런 강렬한 독서체험을 통해 인간은 정신적으로 성숙해 간다. 그런데 독서가 부족한채 대학에 온 학생들은 입학 후에도 「읽지 않고 쓰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소위 「3무주의」에 빠져 있다. 강단에 서면 학생들이 영상중독증에 걸려 심각한 정신적 빈곤상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교양의 부족은 독서부족, 특히 근원적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현실적 필요성이 부족한 고전읽기에 어느 정도 기인하는 것 같다. 지금 우리는 시대의 전환기에 서 있다. 고전에 대한 관심은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대비하는 정신적 자산이 될 수 있다. 오랜 지적과제가 고전 속에서 풀릴 때 고전읽기는 무거운 의무가 아니라 포기할 수 없는 정신적 권리가 된다. 이번 대학측의 결정이 고전읽기 활성화로 연결됐으면 한다. 반덕진(우석대교수/보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