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스무스」 역사는 인간적인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 아니, 경멸한다. 역사는 휴머니스트를 단지 패배자의 이름으로 기억할 뿐. 역사의 위대한 패배자 에라스무스 폰 로테르담. 광신과 폭력으로 얼룩진 종교개혁 시대에 인문주의의 열망 하나로 견뎠던 그의 삶과 신앙의 궤적을 좇는 전기가 나왔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자작나무 펴냄). 고대 언어학자, 문법학자, 종교사상가, 작가로서 16세기 유럽의 지성을 대표했던 에라스무스. 그는 사생아였다. 그것도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신부(神父)의 아들이었다. 수도서원을 하고 신품성사를 받았으나 평생 신부복을 입지 않았다. 그는 일체의 구속과 억압을 거부했다. 유일한 생의 반려는 라틴어와 책뿐. 교황청의 죄상을 낱낱이 고한 「바보예찬」 이후 그의 위세는 전유럽을 울렸지만 일생의 힘겨운 상대 마르틴 루터를 만나면서 그의 인문주의 제국은 균열을 맞기 시작한다. 변혁의 회오리 속에서 자유와 중립을 지키려는 그의 인문주의 정신은 그를 현실의 패배자로 몰고 가는데…. 〈이기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