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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대선의 네거티브 캠페인과 「말의 성찬」

입력 | 1997-12-18 19:20:00


▼민주국가 선거에서는 말 잘하는 후보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말이 유권자를 설득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무기여서 연설 잘하고 토론 잘하는 후보는 돋보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서로가 한마디씩 대응하다보면 말은 어느새 정책공방보다 인신공격의 수단으로 둔갑한다. 말은 상대방을 함몰시키기 위한 총알이 되어 후보간에 무차별 난사를 주고받기 십상이다 ▼이번 대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후보의 인품이 담긴 여유있는 말과 유머는 보이지 않고 상대방의 약점만 치사하게 파헤치는 저질스런 언어구사가 판을 쳤다. 유세장 대신 안방에서 선거운동을 지켜본 유권자들은 이런 고삐 풀린 네거티브 캠페인 때문에 실소하고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한마디로 품위와 격식을 외면한 선거운동이어서 선택할 마땅한 후보가 없다는 분위기도 확산됐다 ▼선진국이라고 우리와 크게 다를 바는 없다. 다만 선진국의 네거티브 캠페인에는 보이지 않는 한계가 있다. 지난해 미국대통령선거 1차 TV토론에서 공화당의 돌후보는 클린턴대통령의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 할 얘기가 있으면 해보라는 사회자의 주문에도 사생활은 건드리지 않았다. 저질 공격에 식상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후보간 저질 공방이 어느 수준까지 가면 언론과 유권자들이 모두 등을 돌려버린다 ▼그러나 우리의 대선 후보들은 본격적인 TV선거운동이 처음이어서인지 네거티브 캠페인에 대한 유권자들의 심리에 너무도 캄캄했다.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해서라도 상대방의 약점을 부각시키면 그것이 곧바로 표로 연결될 것이라는 착각을 했다. 말 잘하는 후보라면 모름지기 유권자의 마음을 읽고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말의 성찬으로 끝난 이번 대선에서 정말 말 잘한 후보는 한 사람도 없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