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루루 드루루루…」. 오전 3시반 고단한 삶의 시계 자명종이 울린다. 국제통화기금(IMF)시대를 살아가는 주부 변미숙(卞美淑·33·경기 성남시 상대원동)씨의 하루가 시작된다. 우유를 배달한 지 4개월여. 무거운 우유수레는 견딜 만하지만 얼어붙은 언덕빼기가 늘 문제다. 그러나 변씨는 마스크 사이로 힘겹게 새어 나오는 뽀얀 입김 속에서 남편(37)과 아이들의 모습을 본다. 오전 5시반. 1백40여가구에 우유 배달이 끝난다. 다음은 신문. 눈을 감으면 신문이 배달될 2백여가구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리고, 단독주택 지역 골목길을 바쁘게 오가며 가능하면 구독자가 편하게 집을 수 있는 곳에 신문을 놓는다. 오전 9시. 남편과 딸(10) 아들(6)을 보내고 변씨는 보험설계사로 나선다. 처음에는 문전박대가 서글펐지만 이제는 참을 만하다. 배달하고 남은 우유를 양주머니에 넣고 손으로 주물럭거리다 보면 정오 무렵엔 제법 차지 않은 우유로 점심을 때울 수 있다. 오후 8시. 늘어진 발걸음을 집으로 옮긴다. 아이들이 『엄마야』하고 달려와 매달려선 좀처럼 변씨를 놔주지 않는다. 오늘은 학교에서 누구 누구가 싸웠다, 선생님이 숙제는 꼭 부모님 사인을 받아오랬다, 친구 누구는 새로 나온 신발을 신고 왔다….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소리가 윙하며 귓전을 때리고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왠지 눈물이 난다. 밤 10시. 아이들은 잠들지만 남편은 나타나지 않는다. 늘 변씨가 잠들 무렵 들어오는 남편. 아내 보기가 미안해서다. 보험사업을 하던 남편이 5개월 전에 큰 적자를 내고 결혼 10년만에 변씨가 처음으로 직업전선에 나서면서 남편은 풀이 죽었다. 얼마 전 방안에서 담배를 피우던 남편에게 『담뱃불 좀 끄라』고 불쑥 말을 던졌던 변씨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으응…. 알았어』하며 도망치듯 방을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에서 그의 외로움을 목격했었다. 지난 일요일. 피곤에 지쳐 정오 무렵에야 잠에서 깬 변씨는 가스레인지에 프라이팬을 올려 놓고 계란을 부치는 남편을 발견했다. 그는 노른자위가 형편없이 깨어진 계란프라이를 서투른 솜씨로 건져냈다. 『여보, 이거 먹어…』 웃고 있는 변씨의 가슴이 찡하게 울려왔다. 『당신 힘내요. 돈 좀 못벌면 어때요. IMF시대지만 내가 있잖아요』 〈이승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