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른바 「지역할거주의」로 일컬어지는 투표관행이 한때 무너지는 현상이 일어났다는 점을 이번 선거운동기간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가장 큰 특징으로 꼽았다. 이같은 현상을 초래한 변수는 경제파탄에 대한 책임론 공방. 이 논란이 제기되면서 이회창 한나라당후보의 상승세가 꺾이기 시작했고 곧이어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의 재협상 발언 논란이 일자 다시 혼전 양상으로 들어갔다는 것. 한길리서치의 홍형식(洪亨植)소장은 『선거운동기간에 돌입한 뒤 IMF 문제가 불거지면서 부동층이 늘고 1,2위간 격차가 늘어났다가 재협상논란으로 공수(攻守)가 뒤바뀌자 혼전으로 빠져 들었다』고 설명했다. 리서치 앤 리서치(R&R)의 김학량(金學亮)이사도 『책임 공방으로 이회창후보의 지지표가 상당수 부동층으로 바뀌었다가 선거 막바지에 다시 돌아갔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유권자들의 표심(票心)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막판 변수는 역시 「지역정서」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른바 「3번을 찍으면 2번이 된다」는 등의 사표(死票)방지론이 영남권과 수도권 유권자들에게 미친 영향이 승부를 가른 중요한 관건이 됐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전문가들은 또 이번 대선에서 유례없이 여론조사가 일반화하면서 선거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과거 대규모 군중유세로 세과시를 했던 전근대적 방식을 여론조사상 나타난 지지도가 대신했다는 뜻이다. 홍소장은 『여론조사가 정치권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커 필요 이상의 과잉반응을 일으키기도 했다』며 『그러나 유권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고 앞으로의 연구과제』라고 말했다. 김이사는 여론조사의 공과(功過)에 대해 『유권자에게 여론의 추세를 알려주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무작위 표본추출의 어려움 때문에 변동폭이 심해 오히려 혼동을 주는 측면도 있었다』고 밝혔다. 고려대의 오택섭(吳澤燮·신문방송학과)교수는 『여론조사가 선거의 방향타 역할을 하는 긍정 효과와 함께 부동층에 대세에 따라 편승하게 하는 밴드왜건 효과도 초래했다』고 말했다. 〈이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