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50년만의 정권교체로 집권경험이 없는 작은 여당과 집권경험이 있는 거대야당의 「신여소야대(新與小野大)」 정국구도가 형성됐다. 이처럼 여야의 원내 의석수가 뒤바뀐 불균형 상태는 기본적으로 불안한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새 정권의 총리인선 등 라인업 형성이나 정책구현은 국회의 뒷받침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 여대(與大) 정국구도 하에서나 가능한 「날치기처리」나 「변칙처리」는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사안마다 야당의 협조를 얻기 위해 애를 먹으며 상응한 대가를 치러야 했던 88년의 여소야대 구도는 이를 실증적으로 보여줬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다른 점이 많다. 우선 한나라당은 오랜 세월 집권경험이 있는 야당이라는 점이다. 과거 자신들이 비난해온 것처럼 무조건 반대만 하는 야당이라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또 과거 3김이 주도하던 야당처럼 일사불란한 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민정계 민주계 민주당합당파 등 정치노선에 차이가 있는 여러 세력이 한 지붕 아래 모여 사는 형편이어서 행동통일을 기하기도 쉽지 않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협조할 것은 협조하면서 집권경험이 있는 야당으로서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겠다』고 다짐한 것도 현실적인 제약을 의식한 측면이 있다. 처음으로 여당이 된 국민회의도 그에 상응해서 과거 여당과는 다른 새로운 면모를 보여줘야 할 부담을 안고 있다. 서러웠던 야당시절을 생각해 사전사후 야당과 충분히 국정을 협의하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으면 『바꿔봤자 똑같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은 6.25이후 최대의 국난으로 일컬어지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아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매섭다. 따라서 당분간은 사안별 협조에 의한 여야관계의 순항(順航)이 예상된다. 그러나 현재의 불균형 정국구도가 장기간 계속될 것같지는 않다. 균형을 지향하는 정치권의 자생적인 움직임이 조만간 활성화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가속하면서 파열음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내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는 다시 열전(熱戰)으로 돌입할 수도 있다. 아무튼 지방선거 후에는 정치권이 조정과정을 일단 마치고 어떤 형태로든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지방선거 결과가 정치권 재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관건은 한나라당이 대선패배 후유증을 어떻게 추스르고 봉합해둔 내부갈등을 어떻게 수습하느냐 하는 것이다. 향후 정계개편의 핵은 거대야당이 된 한나라당일 수밖에 없다. 이한동(李漢東)대표와 김윤환(金潤煥)고문 김덕룡(金德龍)의원, 조순(趙淳)총재와 이기택(李基澤)씨 등 각 계파 중진들의 합종연횡에 의한 세싸움의 결과가 한나라당의 진로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대선 패배 후에도 일반의 예상과 달리 정치를 계속할 뜻을 밝힌 이회창(李會昌)명예총재의 거취도 관심사다. 그는 측근들의 건의에 따라 한동안 근신하고 있으나 지방선거를 계기로 재기를 도모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채청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