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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이어령/IMF시대를 SOHO시대로

입력 | 1997-12-21 20:24:00


국제통화기금의 약자 IMF를 「I am fired」라고 풀이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나는 해고되었다」는 뜻이다. 내년에는 1백만명 가까운 실업자가 생겨날 것이라고 하니 그런 풀이가 나올 만도 하다. 연말 대목이라는데도 호텔이고 백화점이고 썰렁한 찬바람이다. 웬일로 「썰렁하다」는 말이 그렇게 유행하더니만 결국 말이 씨가 된 모양이다. ▼ 실업자 급증 연말 『썰렁』 ▼ 그러나 불황은 자라목처럼 움츠러든다고 그냥 스쳐가는 폭풍이 아니다. 경제가 어렵다고 허리띠만 졸라맨다는 것은 살을 뺀다고 무턱대고 밥을 굶는 것과 같다.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말레이시아의 선택은 다르다. 마하티르총리는 비상 사태 속에서 모든 예산을 감축하고 경비를 절감했지만 MSC(Multimedia Super Corridor)같은 정보화사업에는 오히려 증액하고 있다. 우리라고 말레이시아의 MSC나 싱가포르의 IT비전2000과 같은 미래지향적인 범국민적 프로젝트가 없으라는 법은 없다. 일례로 한전의 전선망(電線網)을 이용하여 광섬유케이블을 설치한다면 한국은 세계에서 제일 먼저 정보고속도로망을 전국에 구축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옛날에 가설한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전의 전선시스템은 광섬유네트워크로 만들 수 있는 쉽고도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화선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PC모뎀은 속도가 빨라야 5만6천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시험중인 한전의 케이블모뎀을 이용하면 20배나 빠른 10기가급의 속도로 모든 데이터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실현되면 한국인은 산업시대의 에너지(전기)망을 정보시대의 정보망으로 바꾸는 최초의 세계시민으로 기록되고 IMF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한국인이 다시 한번 지구촌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당연히 IMF시대를 일찍 졸업하는 지름길도 생겨나게 된다. 홈쇼핑 홈뱅킹 등 생활패턴이 달라지고 기업들의 생산성과 효율성은 다른 나라 기업들의 수준을 훨씬 앞지르게 된다. 무엇보다도 재택근무자를 늘려 실업을 최소화할 수 있고 설사 실업자가 생겨난다고 해도 새로운 회사나 일자리를 만들어 소화할 수 있는 탄력성이 생겨난다. 정보고속도로만 깔리게 되면 아파트 방 한구석에 컴퓨터 한대 갖다 놓고도 회사를 마련할 수 있는 이른바 SOHO(소호·Small Office Home Office)의 시대가 오게 된다. 구름잡는 이야기라고 할지 모르나 실제로 미국에서는 SOHO에서 일하는 취업자가 4만5천명이나 된다. SOHO라는 말조차 들어본 일이 없는 정치가나 관료들은 실업자가 무슨 자본으로 사무실을 차리고 사무원을 둘 수 있겠는가 하고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실업자 대책이나 경제살리기라고 해봐야 기껏 국민을 향해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말밖에는 하지 못하는 것이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봐도 명퇴자나 IMF시대의 실업자들은 포장마차를 차리는 정도의 빈곤한 상상력밖에는 발휘하지 못한다. ▼ PC 1대로 사업 가능 ▼ 그러나 발상을 바꾸고 시대를 보는 패러다임을 바꾸면 자기 아파트에 컴퓨터 한대 들여놓고도 국내는 물론 전세계를 상대로 무슨 사업이고 할 수 있게 된다. SOHO야말로 저비용 고효율의 본보기가 되는 셈이다. 그동안 분수에 맞지 않게 호화아파트를 지어왔다고 비난받던 일이 전독위약(轉毒爲藥)으로 세계에서 가장 으뜸가는 SOHO왕국을 만들 수 있는 자원이 되기도 한다. 일본은 예로부터 토끼장이라고 하여 20평 미만의 작은 규모의 소주택이 많았기 때문에 아무리 발상을 전환해도 SOHO의 꿈을 이루기 어렵다고 하지 않던가. IMF시대를 SOHO의 시대로 바꾸는 발상이 아쉽다. 이어령(이화여대 석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