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 그런 섬이 있는지. 그 섬에 염소가 살고 있는지. 그 염소가 갯기름나물 흰 꽃을 뜯고 있는지. 「네 젖꼭지처럼 여문」 보리수 열매를 빨고 있는지. 그리고 표정없는 달팽이들이 무더기, 무더기로 살고 있는지. 다만 들린다. 파도소리. 물생산 큰산 장바위산에 부는 바람소리. 쓱쓱, 싹싹, 시를 쓰는 소리. 파도소리에 묻히는 시. 시가 부서지는 소리…. 「그리운 바다 성산포」의 시인 이생진씨. 50여년을 섬에서 섬으로 떠돌며 인간의 고독과 섬의 고독을 잇는 시를 써온 시인. 그가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섬, 물 위에 떠 있다기보다는 하늘에 떠 있는 섬, 만제도를 소재로 쓴 시들을 모아 스무번째 시집을 냈다. 「하늘에 있는 섬」(작가정신 펴냄). 인심이 곱고 맑은 섬, 만제도. 해상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어찌어찌, 배를 타고 찾아가도 풍랑을 만나 길이 막히기 일쑤인 섬. 그는 이 섬을 꼬박 10년을 별러 찾았다. 그리고 그는 만제도에서, 그 넘치는 고독 속에서 비로소 인정(人情)에 사무쳐 시를 「부르게」됐다고 한다. 그의 시에는 바늘을 잃어버린 시간이 떠돈다. 시간이, 거꾸로 선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치듯 역류한다. 원시(原始)의 시선에 닿은 문명(文明)이 거기, 한점으로 외롭게 떨고 있다고나 할까. 「대나무 하나 잘라/뱀 쫓는 지팡이 앞세우고/칡덩굴 헤치며/억새풀 갈라가며/…/남의 기억까지 헤치며 올라갔지/…/등대를 올려다봤지/외로운 눈망울/싸늘한 체온…」(등대로 가는 길) 〈이기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