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뒷바라지하느라 노후준비를 못한 노인들은 핵가족 풍토속에 자식과 따로 살려고 해도 생계가 걱정이다. 다소 넉넉한 노인들도 일이나 레저 등 소일(消日)거리가 없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오후 서울 청운양로원. 식당은 트리 색종이 풍선 등으로 장식해 놓았지만 찾는 이가 없어 썰렁했다. 두세명의 노인만이 양지 바른 뜰 앞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한 직원은 『교회 등 사회단체를 포함해 12월 들어 면회횟수가 11건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같은 날 점심무렵 탑골공원.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무료로 나눠주는 음식을 먹고 있었다. 이들은 『할 일도 없는 집보다 친구가 있는 이곳이 좋다』고 말했다. 공원관리사무소측은 날이 추운 요즘에도 멀리는 의정부 인천, 가깝게는 인근 동네에서 하루 1천5백여명이 찾고 있다고 귀띔했다. 청운양로원과 탑골공원은 요즘 노인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현재 65세이상 노인인구는 2백90만여명으로 전체 인구의 6.3%. 2000년에는 7.1%, 2022년 14%를 넘어설 전망이다. 노령화사회가 남의 일이 아닌데도 우리는 이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다. 내년 노인복지예산은 총예산의 0.24%인 1천8백여억원에 불과하다. 선진국의 5%대에 비교할 수준조차 못된다. 이 때문에 노인복지는 무의탁노인 등 저소득층을 위한 양로원 요양원 등 시설보호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시설수용 노인수는 1백60여곳, 8천8백여명으로 20여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저소득층노인들의 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시설은 20% 정도가 남아돈다. 들어가봐야 혼자 사는 것보다 크게 나을 것도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와 함께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점은 바로 건강문제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노인들의 60∼70%가 고혈압 관절염 등 만성퇴행성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병원이나 요양원에 장기입원한 노인환자가 미국의 경우 전체의 5%, 유럽은 3∼5% 정도이지만 우리는 10분의1에도 못미치는 0.3%만이 요양원 등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최근 치매나 중풍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병원이 생기고 있고 중산층이상을 위한 노인종합복지관이나 고급양로원이 조금이나마 늘고 있다는 대목이다. 서울시 김봉환(金奉煥)노인행정계장은 『서울시도 시민복지 5개년계획을 세우고 노인복지에 대한 투자를 늘릴 계획』이라며 『지금의 40, 50대가 노인이 될 때 국민연금제도 등으로 상황이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양섭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