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의 한파가 얼마나 모진 것인지 그렇게도 오랜 집념 끝에 승리한 것인데도 김대중(金大中)대통령당선자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지고 만 것처럼 보인다. 선거기간 중에 그렇게도 자주 보여주던 미소는 사실 선거용이었던 것뿐만 아니라 외화사정, 모라토리엄 직전으로 전락한 나라살림의 실정을 파악하지 못한데서 왔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렇게도 경제통이라고 하는 당선자가 그것도 몰랐는가 하고 나무랄수가 없다. 우리 정부란 비단 지금 정부뿐만 아니라 역대 모든 정부가 자기네 치적을 자랑할 뿐 어둡고 어려운 사정은 언제나 은폐해왔으니 어떻게 국민이알 수 있었겠는가. 김대중당선자도 승리의 오늘까지 역시 마찬가지로 ‘무지’를 강요당해 온셈이다. ▼ 「낡은 생각」 도마위에 올려야 이런 어려움 속에서 당선자를 바라보는 국민의 눈초리가 회의적이고 불안에 가득차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승리에 대한 축하를 보내기보다는 동서대립의 골은 더 깊어졌느니, 그에게 표를 던지지 않은 비율이 60% 가까우니 하면서 당선자에게 국민대화합을 이루어낼 수 있겠는가라고 묻고 있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환희는 하루 이틀이고 역시 미소를 잃은 얼굴에 우울한 빛이 감돌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 속에서 김대중당선자의 승리가 의미하는 것을 숙고할 겨를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로는 좀더 냉정히 그의 승리가 한국 현대사에서 가지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닐까. 마치 그가 소수표로 당선된 것처럼 말들 하지만 사실은 지난 19년 동안에 치른 세번의 선거에서 가장 많은 득표율을 보였다. 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당선자의 득표율은 27.1%였고, 92년의 14대 대통령선거에서는 33.8%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번 대통령선거에서는 40.3%를 기록했다. 오늘같이 급변하는 시대에는 거의 날마다 새로운 사태, 전혀 우리가 생각도 하지 못한 역사에 직면하게 된다. 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때만이 아니다. 어떻게 우리가 오늘과 같은 IMF한파를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언제나 낡은 생각을 자기비판의 도마에 올려 놓고 새로운 자세와 생각을 다짐하지 않고서는 급변하는 역사에 대처할 수가 없다. 근대국가는 경제적으로 근대화 또는 산업화, 정치적으로는 통일된 국민국가 건설이라는 두가지 과제를 짊어져야만 했다. 이웃 일본만 해도 19세기 후반에 시작된 이 길에서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희생과 실패를 거듭했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2차대전의 패전을 겪고 나서야 민주국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것은 험준한 길, 멀고도 먼 민주화의 길이었다. 식민지 지배하에 있었던 우리는 해방되었다고는 해도 남북분단 때문에 1960년대에야 뒤늦게 그 길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권위주의-부패구조 청산을 일본이 총파탄과 더불어 전후에 민주주의를 전면적으로 수용한 것처럼 우리도 경제적인 총파탄과 더불어 전면적으로 민주주의를 수용해야 하게 됐다고 할는지도 모른다. 권위주의적인 지배를 거부하고 삼권분립의 체제를 확립해야 한다. 부패를 일삼던 가신정치를 버리고 공개적이고 투명한 국민 참여의 정치를 전개해야 하며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재벌체제에 손질을 가해야 한다. 역사란 무엇인가. 나 자신이나 내 정치세력이 원하는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승리란 화려하기보다는 진흙투성이 얼룩진 것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나를 비우고 이 역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도리밖에 없다고 우리 모두가 고백하면서 새해 새 출발을 다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지명관(한림대교수·사상사)